4월 3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독서 : 사도행전 4,32-37
복음: 요한 3,7ㄱ.8-15
< 뱀의 피가 가진 생명력 >
랙스 박사는 런던의 동부 지역에서 38년간 목회하던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노인이 몹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애쓰던 랙스 목사님은 냉랭한 난로와 바닥나기 시작한 식량을 알아챘습니다.
그 집을 나선 목사님은 두 덩어리의 양고기를 그 집에 배달해주도록 주문하였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은 또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전보다는 약간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목사님은 또다시 양고기를 주문하였습니다.
세 번째 심방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노인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결과 랙스 목사님은 노인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랙스 목사님은 설교 부탁을 받아 며칠 동안 런던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목사님은 그 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랙스 목사님에게 전해주십시오. 이제 나는 곧 하느님께 돌아갑니다.
이처럼 나를 변화시킨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 주셨던 양고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은 ‘은총과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은총과 진리를 충만히 지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 1,14. 17).
네 발로 걷고 말도 못하는 아기가 새로 태어나 말도 하고 네 발로 걸으려면 반드시 부모가 주는 은총과 진리가 필요합니다.
‘은총’이라는 것은 곧 부모의 피입니다.
부모의 희생이 없이는 아기는 자신의 부모에 대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젖을 주는 사람이 엄마입니다.
만약 부모 대신 늑대가 젖을 주면 자신이 늑대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은총’이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은 하느님의 피입니다.
은총을 받아 믿음이 생긴 이가 찾게 되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묻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두 발로 걷고 말을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배운 대로 행동하려 하며 자신의 부모처럼 되어갑니다.
이렇게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은총과 진리, 중 더 중요한 것은 은총입니다.
일단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배워봐야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박식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로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
순서상으로는 진리를 먼저 주셨습니다.
3년 동안의 가르침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당신 목숨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들이는 순서는 그분의 십자가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그분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연구합니다.
그래서 위의 이야기에서 노인이 자신을 변하게 한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양고기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저 성체를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믿음이 생기면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말씀의 전례가 먼저이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마치 모세가 장대에 매단 구리뱀처럼 십자가에서 달리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예수님 자아의 피입니다.
자아는 뱀입니다.
뱀은 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느님 뜻이 당신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당신 뜻이 죽어 피가 흘렀고 우리는 그 피로 새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새로 태어남이란 그분의 피로 나의 뱀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나 혼자 죽일 수 없고 먼저 나를 위해 죽은 이의 피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먼저 죽어야 그 피로 나도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갈 때 매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자신이 20년 동안 번 재산과 아내를 비롯한 자녀들을 모두 선물로 보냈지만 그래도 400명을 데리고 오는 형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하느님께 은총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의 골반 뼈를 부러뜨리셨습니다.
남자에게 골반은 생식력을 나타내고 생명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것이 부러진다는 것은 생명을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그 덕분으로 에사우에게 나아갈 때 일곱 번이나 절을 할 수 있는 겸손함이 생겼습니다.
자신 앞에서 죽은 모습을 보이는 야곱에게 에사우도 마음을 접고 따듯하게 맞아줍니다.
내가 죽어야 타인도 죽는 것입니다.
내 죽은 피가 누군가도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으면 상대도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피를 지니고 다녀야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좋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이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나의 죽음은 이웃의 새 생명의 씨앗입니다.
뱀은 살아있으면 남을 죽이는 독을 뿜지만
죽어 피를 흘리면 남을 살리는 약이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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