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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28 조회수 : 561

3월 28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 ‘진리’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용기 > 

신학생 때, 저보다는 나이가 6살이나 어린 신학생들이지만, 입학을 함께 했던 신학생들과 함께 바다를 걷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좀 불고 있었고 그래서 파도가 높게 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척을 하기 위해 파도가 생기는 이유는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달의 끌어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밀물과 썰물에 의한 조수간만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물이 빠졌다 들어왔다 하면서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른 신학생이 파도가 치는 것은 ‘바람’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니까 파도가 높게 치는 것이지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파도가 저렇게 높게 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바람도 조금은 영향이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만유인력에 의한 밀물과 썰물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 신학생도 물을 떠 놓고 입으로 바람을 불게 하면 물살이 이는 것을 모르느냐고 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저도 그 신학생의 말이 더 옳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나이가 6살이나 어린 동생들에게 파도가 왜 치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기 싫었습니다. 

자존심상 의견을 바꾸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바닥에 그림을 그려 가며 달과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바다의 높이가 변하는 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함께 있던 신학생들이 형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했는지, “그래, 그래! 둘 다 맞는다고 하자.”하며 결론을 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끝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완전히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척을 하였습니다.

사실 파도의 가장 큰 원인은 ‘바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이 달의 만유인력에 의한 조석 즉 밀물과 썰물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생들이 더 맞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토론하는 중에 상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돌아설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친구가 저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기 때문이었고 저는 그 어린 친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이단에 빠졌다가 그 실체를 알고 고민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이단이 잘못되었는데 왜 나오지 못하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엔 나의 선택이 정말 옳다고 여겼고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게 봤지. 그래서 많은 재산도 바쳤고. 근데 이젠 쪽팔려서 못나가.
친척들이며 내가 무시했던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기 때문에 자신이 틀렸었다고 용감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자존심’이 결국엔 영혼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시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나라도 갈라져서는 버틸 수 없다고 설명해 주시고 그것은 마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목적이 같기 때문에 뭉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 두목이 같은 마귀를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마귀보다 더 큰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더 큰 힘이란 하늘에서 오는 힘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이미 하늘에서 오는 표징임에도 그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바꾸기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많이 배운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 마을의 한 목수 아들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은 성전에서 공부한 석학들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학벌도 없는 촌뜨기인 예수님께 
밀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교만과 자존심은 이미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벨상을 휩쓸 정도로 교육을 잘 시킵니다. 
물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키워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틀리면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따라서 유태인보다 더 위대한 교육은 겸손한 사람으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그 ‘진리’를 용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을 길러주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끊임없이 종교와 믿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것인데, 처음부터 종교가 잘못되었다는 고정관념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바꿀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울까요? 
바로 부모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존심이 상한다고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옳다고 우긴다면 그와 똑같은 자녀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자녀를 만들고 싶거든 부모님도 잘못하면 자녀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진리’에 무릎 꿇을 수 있는 모범을 보여주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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