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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25 조회수 : 524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복음: 루카 1,26-38 
 
<​ 사람은 자신이 정해놓은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 > 

인간은 자신이 규정해 놓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행동합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자신을 규정해 놓으면 사람임에도 늑대처럼 행동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라고 합니다.  
 
각자 자신이 어때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야하느냐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누군가 자신을 더욱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마인드풀 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인 정민 씨는 어렸을 때부터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습니다. 
그 원인은 돈을 벌기 위해 딸을 돌볼 수 없는 형편이었던 어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녀는 항상 바빴던 어머니와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능력 있는 어머니였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었지만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였기에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불면증과 불안장애로 인해 급기야 ‘자해’에 중독되었습니다. 
자신처럼 부모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존재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게까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손목을 긋고 붉은 피가 솟아나오면 그때야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충족적 예언’입니다.  
 
자신이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믿었기에 그 예언을 충족시켜 주었을 때 비로소 평화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마치 중독처럼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 부족으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그것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피카소의 어머니는 피카소에게 엄청난 가치를 부여해주었습니다. 
피카소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내게 그러셨죠. 
‘네가 군인이라면 장군이 될 것이다. 
네가 성직자라면 교황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저는 화가였어요. 그래서 피가소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각자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평가해놓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자기 가치를 가치 없게 평가해놓고 살면서도 그것이 겸손인줄 압니다.  
 
제가 “여러분은 사람입니까, 하느님입니까?”라고 물으면 거의 모두가 “당연히 사람이죠!”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자기 충족적 예언입니다.  
 
사람이라 평가해 놓은 사람은 절대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이미 자신의 크기를 그만한 어항 속에 가둬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께 제시된 것은 실로 엄청납니다. 
바로 하느님도 아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즈카르야는 예언자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도 아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도 “아멘!”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교만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을 믿지 않고 오늘 복음말씀에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대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을 절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아의 자기비하적인 예언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으니 자기를 만드신 분을 믿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교만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저는 개에요!”라고 하는 것이 불효이듯, 하느님께 “저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이 될 수 있음을 믿기 원하십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제가 감히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겠어요?”라고 하셨다면 인류 구원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겸손하신 이유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아니라 하느님의 우리 자신에 대한 예언을 믿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겸손은 만들어진 내가 아니라 만드신 분을 믿는 데서 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에게 “너는 선악과를 따먹어야 하느님처럼 돼!”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선악과가 없으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란 뜻입니다.  
 
부모님이 “공부를 잘 해야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공부 못하면 넌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숨만 쉬고 있어도 하느님임을 믿기를 원하시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시는 이 예언을 깊이 새겨봅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못 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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