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5,1-3.11ㄴ-32
< 행동이 아니라 욕구에 집중하라. 그게 나다! >
‘헬과 마리’라는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헬은 아주 험상궂게 생겨서 사람들이 다 싫어했습니다.
그런 헬이 어느 날 아리따운 아가씨 마리를 만납니다.
가슴 깊이 찾아든 사랑의 열정으로 용기를 내어 청혼을 했지만 마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헬의 마음을 아신 하느님은 헬에게 가장 온화한 사람의 얼굴 가면을 선물하십니다.
헬은 그 가면을 쓰고 다시 마리를 찾아가 청혼합니다.
마리는 결혼에 응합니다.
결혼하고서도 헬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면 속에 감추고 삽니다.
헬은 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므로 온 힘을 기울여 마리를 보살폈고 마리는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그런 마리의 행복이 헬에게도 크나큰 기쁨이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헬의 행복을 질투한 친구가 헬의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그리고 마리가 보는 앞에서 헬의 가면을 벗겨버립니다.
그 순간 가장 놀란 사람은 마리도 헬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헬의 험상궂은 얼굴은 이미 거기에 없었고 가면과 같은 인자하고 친절한 얼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위에도 가면이 있는 것을 안 헬의 친구는 그것을 벗어봅니다.
그런데 헬의 이전 얼굴이 친구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막스 비어의 ‘행복한 위선자’라는 책의 내용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그 행위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행위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가장 정확히는 ‘욕구’로 드러납니다.
본성이 욕구입니다.
사랑하면 겉모양이 아무리 험상궂어도 속에는 사랑의 본모습이 있고 아무리 착한 행동을 해도 바라는 것이 험악하면 그 사람의 본 얼굴은 험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보지 말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살펴야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가 바로 자신의 본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욕구가 아닌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만 의인이라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에 자신들이 속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위선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속은 음탕한 마음으로 간음하고 있었고 화나는 마음으로 살인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은 의인이었지만 속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은 죄인이지만 속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세리와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세리와 죄인들의 편이 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겉이 아닌 속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말씀의 형은 아버지 밑에서 죄라는 것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생은 온갖 죄를 짓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서야 아버지께 돌아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왜 죄만 짓고 온 놈을 자신보다 더 잘 대해주느냐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죄는 이것입니다.
동생이 지은 죄를 은근히 부러워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동생은 흥청대었습니다.
이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그도 마음으로는 그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욕구로는 이미 죄인이지만 겉만 보고 자신을 판단하니 의인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반면 동생은 이제야 아버지 밑에서 죄 안 짓고 형처럼 일하는 것이 행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 했습니다. 속으로 좋아하는 것이 나의 본성입니다.
남이 죄를 짓는 것을 보고 화가 나면 나도 죄를 짓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화를 내는 사람은 그 죄인들이 받을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제가 한 본당을 떠나기 직전 한 자매님이 저에게 감사인사를 왔습니다.
형제님이 외도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저에게 1년 전에 상담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매일 1시간 동안 성체조배 하라고 했고 그분은 그것을 지켰습니다.
남편이 회개한 것은 아니지만 자매님이 변했다고 합니다.
그전엔 남편이 미워서 죽겠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불쌍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뻔히 알아도 식사도 차려주고 이불도 깔아주며 잘 주무시고 나가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기적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내가 회개를 했다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불쌍해보여야 합니다.
죄 짓는 것이 고통임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하면 무엇이 행복인지 알게 되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삶으로는 갈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죄가 고통임을 알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작은 아들의 길을 밟아야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시고 이것을 아신 분은 성모님과 예수님밖에 없으십니다.
죄를 지어본 우리들이 아직까지 죄를 짓는 사람들이 행복하겠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본성이 죄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안 짓는 것이 더 큰 행복임을 안다면 그 사람의 가면 뒤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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