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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6 조회수 : 302
제가 이곳저곳에서 많은 강의를 하지만, 이를 위해 저 역시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교육을 받으러 갑니다. 교육 중에는 무료 강의도 있지만, 비싼 강의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료 강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료 강의와 유료 강의의 차이를 보면, 듣는 사람의 자세부터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강사가 뛰어나다해도 무료 강의를 보면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아 앉아서 듣기만 합니다. 마치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보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감시하듯이 바라봅니다. 그러나 유료 강의는 좀 다릅니다. 똑바른 자세를 취하고 손에 펜을 쥐고서 열심히 필기를 합니다.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재미있지도 않은데 반응이 대단합니다. 

이는 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꼭 듣고 싶었던 강의가 있었는데 500만원이 넘는 강의료를 내야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 어떠했을까요? 강사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집중을 했었는지 모릅니다. 강의료를 뽑아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말이지요. 

사람들은 공짜로 얻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명한 강의들은 다 비쌉니다. 비용을 지불한 만큼 자세도 좋아지기 때문에, 교육성과도 당연히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는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만 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주시는 것도 모두 공짜로 주신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주님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주님의 뜻을 따름에 있어서 소홀해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으로 모두 공짜로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소홀히 해도 된다고 공짜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받았으니, 우리 역시 공짜로 나누어 주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도 충분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바로 우리들의 봉헌을 보시는 것입니다. 빵 일곱 개라는 작은 봉헌이었지만 사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는 놀라운 은총을 주십니다. 

공짜냐 공짜가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마음으로 봉헌과 희생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마음만이 주님의 커다란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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