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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0 조회수 : 282

어떤 교우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천주교 신자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저는 이 사람과 전생에 원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사람과는 좋은 관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관계를 절대로 맺을 수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예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주 친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분이 급하게 돈 쓸 일이 있다면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워낙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서 흔쾌히 빌려주었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한 번 더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어떨까요? 그래도 친한 관계이기에 약간 미심쩍지만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또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때부터는 나쁜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나쁜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려울 때, 뜻밖에 이 사람이 나를 도와줍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분명히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면서 의심하고 가까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멈추지 않고 또 다시 어려움에서 나를 도와줍니다. 그러다가 더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도와줍니다. 이때 이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나쁜 관계가 아닌 가장 좋은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좋은 관계도 나쁜 관계가 될 수 있고, 나쁜 관계도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좋은 관계도 또 반대로 나쁜 관계도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즉,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은 주님께서 내게 특별한 사랑을 주시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뜻에 따라 살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은총을 받은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거부했던 것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늘 사랑으로서 다가오시기 때문에, 이 사랑에 응답만 하면 좋은 관계를 간직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을 따를 때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큰 행복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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