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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3일 _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03 조회수 : 303


루카 4, 21-30(연중 4주 주일)

 

 연중 4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 부르심 받은 이의 소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독서>는 예언자 예레미아의 부르심과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아를 부르셨을 때, 그의 나이 불과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사제의 아들로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아나톳이라는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내렸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사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 1,5)

 

 이는 예레미아가 하느님을 알기도 훨씬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셨는데, 사랑으로 그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내가 너를 알았다.”는 성경의 표현 방식은 내가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너를 택했다’, ‘내가 너를 온전히 차지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르심이 그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어서, 예언자로서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거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예레 1,17-18)

 

 사실, 그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고 혹독한 시련을 겪고 배반자로 비난받고 감옥에 갇혔으며, 그의 생은 이집트의 저 멀리에서 마감되는데 아마도 살해되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처절한 실패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의 죽음에서 실패가 승리임을 보듯이, 참으로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소명에 대한 성공과 실패는 인간적인 잣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를 선포하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라고 선언하지만, 그의 고향 사람들은 놀라워할 뿐 받아들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이에,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들은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루카 4,29)

 

 이는 예수님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으실 배척을 예고해줍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예레미아가 이집트로 내몰렸던 것처럼, 성문 밖으로 내몰리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죽이려는 그들의 음모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4,30)

 

 이는 당신이 수난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당신께서는 수난을 스스로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몸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실로 당신께서는 원하시면 붙잡히시고 원하지 않으실 때는 잡혀가지 않으시며, 또한 원하시면 빠져나가시고 원하실 때에는 나무에 달리실 것입니다(요한 18,7-8). 사람들은 언덕 위 벼랑에까지 그분을 떨어뜨리려 내몰아갔지만, 그들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시는 그분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수난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들은 완고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역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고집부리는 사울을 꾸짖을 때, 사무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1사무 15,23) 

 

 그러기에,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고집할 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지, 하느님을 자기의 좁은 지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완고함이야말로 불신의 씨요, 믿음이야말로 하느님을 끌어당기는 자석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은 완고함과 고집으로 형제를 불신하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를 믿음과 사랑과 희망에로의 초대입니다. 

 오늘 < 2독서>는 이러한 부르심 받은 이의 사랑의 소명을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가 결코 당신을 배척하지 않게 하소서!

 저에게서 결코 당신을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제 형제를 배척하는 바람에 당신을 배척해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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