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떤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큰 부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집이 그렇게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부러움의 이유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도 책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하나도 없었지요. 대부분은 아버지께서 보시는 책들이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지금처럼 가로로 편하게 읽는 책이 아니라 세로로 읽어야 하는 질 나쁜 누런 종이에 인쇄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집에는 만화로 되어 있는 세계명작전집, 위인전기, 과학백과 사전 등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친구에게 “너는 책이 많아서 정말로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이거 장식용이야. 나는 한 번도 이 책들을 펼쳐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책 읽는 아이가 되길 원했기에 이렇게 많은 책을 사줬겠지요. 그러나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이 친구는 장식용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많은 책들이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인데 정작 본인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능력과 재주가 없다, 건강하지 않다, 배운 것이 없다, 나이가 많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스스로를 정말로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 소중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존감도 잃은 것이 아닐까요?
오늘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보면서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당신 계획의 일꾼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는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할 사람인데 세상의 눈으로는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을 부르실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눈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에, 이는 곧 모든 사람이 다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들이 보여주었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이 지상 생활의 그 어떤 것도 연연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게도 주님의 부르심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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