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복음: 마태오 2,1-12
< 사랑은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요 동시에 성공으로 손꼽히는 어니스트 섀클턴이 지휘했던 남극탐험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때는 1914년 8월 섀클턴은 27명의 대원들과 함께 남극 횡단에 나섭니다.
이 시대는 모험의 시대로 수많은 이들이 바다와 북극과 남극, 혹은 높은 산을 정복하려던 영웅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인듀어런스 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바다 위를 떠도는 얼음 섬에 부딪혀 표류하게 됩니다.
겨울은 점점 다가왔고 이는 곧 죽음이 다가옴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대원들은 서로를 위해주고 각자의 일을 착실히 수행했습니다.
인듀어런스 호의 이 같은 평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섀클턴이 대원을 뽑았던 방식을 보면 그런 사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면접 장소에서 갑자기 노래를 불러보게 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소리를 질러보라고 합니다.
섀클턴이 원했던 것은 화려한 경력의 이력서가 아니라 함께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 ‘마음 자세’였던 것입니다.
1916년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합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엘리펀트 섬(해역에 서식하는 바다코끼리에서 따온 지명)에 도착한 처지에 그것은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280km.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만만찮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원들 중 선원이라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듯이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섀클턴은 한 달 후에도 자신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 섬을 탈출하라고 명령합니다.
비틀거리는 배에 부딪힌 파도는 곧바로 얼어버렸고, 9일째가 되면서 커드 호의 움직임이 점점 위험스러워졌습니다.
나무와 돛, 줄이 꽁꽁 얼어붙은 채 간신히 물에 떠 있는 상태였습니다.
섀클턴은 고통스러웠던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대원들 모두가 뼛속까지 젖고 얼었다.
7개월 동안 벗지 않은 젖은 옷 때문에 몸을 추스르기가 더욱 힘들었다.
젖은 발과 다리는 하얗게 변한 채 심하게 부풀었고, 손은 때와 고래 기름, 동상, 스토브의 연기 때문에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손끝을 약간 움직이기만 해도 전신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1916년 5월 (천신만고 끝에 조지아 섬에 도착한 직후) 섀클턴은 새로운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와 다른 두 사람이 섬을 가로질러 반대편의 스트롬니스 포경기지까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산, 해발 3천m, 험한 바위와 위험한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고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몹시 위험했습니다.
아무도 넘어본 적이 없는 미지의 산이었고 당연히 지도도 없었습니다.
“섬의 지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사우스조지아의 해안에서 안쪽으로 단 1km라도 들어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섀클턴)
장장 36시간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산을 넘습니다.
당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구조선을 얻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편 와일드는 섀클턴 일행이 떠난 후 22명의 대원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섀클턴이 꼭 돌아온다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섀클턴이 떠난 지 4개월이 지난 1916년 8월 30일,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배가 왔어요!”
갑판에는 섀클턴이 망원경으로 얼음 섬에 있는 생존자의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모두 무사합니다!”
조난당한 뒤 무려 634일만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 대원이 구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실패 속에서 섀클턴이란 선장의 ‘마음자세’를 봅니다.
무언가 이루어내는 사람과 이루어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마음자세’에 있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 이루어내고, 약한 사람은 중도에 포기합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어차피 목표가 정해지면 직행을 타는 사람이고, 약한 사람은 언제든 중도에 내릴 수 있는 완행을 타는 사람입니다.
완행을 탄 사람은 기차가 설 때마다 내려서 돌아가야 하느냐, 아니면 계속 가야하느냐 갈등을 하지만 직행을 탄 사람에겐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갈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인과 소인의 차이인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저를 스승으로 삼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스승은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는 것들을 하실 수 있나요?”
그분은 당연히 따라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란 책을 20년이 넘도록 매일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20분만 읽으면 3년이면 10권을 다 읽게 될 테니 다 읽는다면 제자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몇 달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마음으로 바란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마음으로 원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성당 나와서 미사 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텐데 사실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별이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별은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원하는 모든 이들을 이끕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별을 쫓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출발을 했더라도 많은 이들이 포기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난 동방 박사들도 별이 갑자기 사라져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래도 죽음을 각오하고 헤로데에게 새로 난 왕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헤로데는 그 곳의 왕인데, 새로 왕이 났다고 말하는 것만큼 목숨을 내놓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메시아를 만나고 경배합니다.
부르심을 받는 이들은 많지만 그 초대에 끝까지 응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감사하는 것이 모든 전례의 핵심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감사 일기를 써보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선물로 노트를 다 나누어 주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반 이상이 포기를 하였습니다.
감사에 도달하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인데 그 말을 믿지도 않고 또 거기까지 도달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가끔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하게 되는데,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처럼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오다가 간단하게나마 혼인예식을 하면 매우 감격해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시간에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끝까지 사랑하고 존경하겠다는 서로의 결심을 확인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며 살면 되지, 이런 결단의 순간이나 예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랑은 ‘의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계약을 맺었다면 그 계약의 조건을 끝까지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 사람이 되신 말씀께서 당신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신다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당신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만나기를 원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신다는 뜻이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한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버리고 세상까지 내려오신 하느님의 사랑에 비할 것은 못 됩니다.
사랑은 의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을 사랑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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