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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3일 _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2-23 조회수 : 298


루카 1, 39-45(대림 4주 주일)

 

 대림 4 주일입니다. 성탄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오실 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오시는 분이 어떻게 오시게 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오실 분에 대한 네 가지 정보를 미리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분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미카 5,1)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분께서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오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둘째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실 것이며, 해산하는 여인의 아기(미카 5,2)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오실 그분은 목자로 나서리라(미카 5,3)는 사실입니다. 백성을 인도하고 먹여주고 보호해주고 안전하게 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넷째는 그분은 평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미카 5,4)는 사실입니다. 평화이신 당신을 건네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오시는 분이 짐승의 피로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내놓으실 것이고, 그것이 당신의 뜻이며, 그 뜻을 이루러 왔다(히브 10,7)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틀 전에 들었던 강론했던 부분이라, 한 가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1독서>의 말씀인 여인의 아기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졌음과 <2독서>의 말씀인 오시는 분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음을 보여줍니다.  <2독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라는 말씀과 <복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는 말씀은 같은 말씀에 해당합니다. 이 두 문장 가 같이 들어있는 말은 이루다는 단어인데, 앞 문장에서는 능동형으로, 뒤 문장에서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오시는 분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안에서 그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데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문제 삼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그것을 할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하느님의 뜻의 불확실성을 탓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뜻은 이미 보았듯이 하느님께서 이루시기에, 우리는 그것에 그저 응답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확실하고 이해하고 명확하게 알고서 응답하려 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 안셀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으리라.”

 

 사실, 하느님의 뜻은 본질적으로 계시되어 있지만 동시에 신비에 가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협조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그분의 겸손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그분께 대한 신뢰와 의탁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영성 안내자로 살아가고 있는 존 캐버너가 자신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캘커타에 봉사활동 하러 갔을 때에, 수녀님께서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존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자 수녀님께서 되물었습니다. 무엇을 기도해 드릴까요?” 존이 확실하게 알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자 수녀님께서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당신이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존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또한 믿고 있는 분처럼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께서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한 번도 확실하게 알고 믿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늘 가지고 사는 것은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이끌려가게 될 곳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실 때, 목적지를 알려주거나 지도를 마련해 주지도 않으면서 떠나라라고 하셨고, 그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지만 신뢰로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마리아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니 사실, 하느님의 뜻의 불확실성 때문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지 못하여 응답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확실히 알고서 응답하려는 불신일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이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믿음의 길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분의 동행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선한 뜻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은 알고 이해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행할 때 실현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마리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행복이 자신의 뜻이나 자신의 바람을 이루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는 데 있음을 말해줍니다. 곧 자신에게서 자신의 뜻이 아닌 다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요? 자신의 뜻을 이루는데서 찾고 있나요? 아니면 내 안에서 다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서 찾나요? 진정 다른 이에게 신뢰를 두는 일에, 그리고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에 나의 행복을 두고 있나요? 이미 와 계신 그분이 우리 안에서 당신 뜻을 품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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