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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21 조회수 : 412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 : 마태오 12,46-50

< 성모님은 피보다 뜻으로 어머니시다 >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증오심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구약의 이사악입니다.  
 
이사악은 아버지로부터 제물로 바쳐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악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구해준 처녀와 혼인합니다.  
 
물론 이사악이 아버지를 증오했다거나 보복을 하려했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 하지 않았다면 이사악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사악은 아버지의 믿음을 보고 아버지의 아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름이 핏줄의 애정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믿음을 닮은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 뜻에 봉헌하려 했던 것은 오히려 이사악을 새로 태어나게 만들려는 하느님의 의도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다시 태어남은 사랑을 받음으로써 비롯됩니다. 
사랑을 받음으로써 그 사랑을 받는 사람 안에서 그 사랑을 주는 분의 뜻을 따라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이 받은 것이 없는데 주인을 따라주는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밥이라도 주고 눈길이라도 주니 주인을 따라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태어남은 자신에게 양식과 보호를 준 부모의 뜻을 받아들일 때 시작됩니다.
부모의 뜻대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뜻을 받아들이면 봉헌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자신의 뜻을 바치는 것이 봉헌입니다.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여 아이들은 자신의 뜻을 바칩니다. 
게임을 하고 싶어도 공부를 하고, 인사를 하기 싫어도 어른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것이 참다운 자기봉헌입니다.  
 
이사악은 자신 때문에 아파해야 했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을 따르며 새로 태어났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세 살이 되던 때부터 성전에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신 고백을 세 살 때부터, 그러니까 자의식이 생긴 때부터 하고 계셨다고 보아야합니다.  
 
나를 봉헌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내 뜻을 봉헌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하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성모님께서 당신을 피로써만 낳으셨다면 하느님의 아드님인 당신의 어머니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뜻’으로 낳으셨습니다. 
모든 새로 태어남은 뜻을 통해 성취됩니다.
뜻으로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누군가가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뜻에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것이고 아드님은 그 봉헌 덕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분은 성모님밖에 없습니다. 
뜻으로 낳는다는 의미를 아시는 성모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말에 기분 나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피보다 뜻으로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뜻을 위해 내 뜻을 십자가에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새로 태어나고 내 뜻을 받아들이는 이웃들이 새로 태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뜻을 통한 낳음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되고 창조자가 되는 행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면 마음이 뿌듯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처럼, 위대한 창조, 즉 하느님의 자녀들을 낳는 그 기쁨은 세상 어떤 기쁨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래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는 기도를 충분히 들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고 하듯, 당신이 뜻으로 낳은 아드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으로 태어난 자녀도 기쁠 수밖에 없어서, “태중에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당신을 닮아 아버지의 뜻대로 하느님의 자녀를 낳는 일을 하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부자가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닮아 하느님 뜻대로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성모님을 기리는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우리 뜻을 봉헌하는 자기봉헌이 쉼 없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할 때 나도 태어나고 나를 통해 누군가도 또 태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자로서의 하느님 기쁨에 참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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