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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20 조회수 : 490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복음 : 루카 19,1-10

< 죽음에 이르는 욕망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란 사형수와 사형장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사형장을 지옥 3정문이라고 하고 목을 졸라 죽이기 때문에 넥타이 공장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사형장의 출입문은 ‘고만통’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이 문으로 들어가면 ‘만사가 고만’ 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사형이 확정된 죄수들은 공휴일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공휴일은 사형 집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사형수들은 감옥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합니다.
사형수를 보고 “집행하려 갈 시간이니 나와라.” 하면 순순히 나오지 않기 때문에 “00번 면회요!” 하고 불러내어 면회 장을 향해 걸어가다가 형장으로 방향을 돌리게 한답니다. 
이때 어떤 죄수는 주저앉기도 하고 어떤 죄수는 바닥에 발이 붙은 양 발을 못 옮긴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고만통 즉 사형자의 출입문 앞에 이르면 일단 한번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무학재 고개를 넘어 흰 구름을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어 땅을 한번 쳐다보고’는 현장으로 들어가서 생을 마감합니다.
   
마지막 죽기 직전에 하늘을 보는 심정은 어떻고 땅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요? 
결국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가 지금 운명을 맞게 한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고 뱀은 땅을 기어 다닙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라 하시고 뱀은 돈이 최고라 말합니다.  
 
하늘을 볼 것인지, 땅을 볼 것인지는 나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마지막 운명이 결정됩니다. 
하늘을 바라고 살고 싶었지만 죽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것이 한탄스러워 하늘과 땅을 번갈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땅만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바라는 것을 바라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을 바라보고 주님을 좋아하면 주님을 바라봅니다.  
 
자캐오는 본래 돈을 추구해 온 사람임으로 땅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주님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작아져 있습니다. 
작다는 뜻은 세상 것에 대한 욕망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캐오는 나무에 올라야했습니다. 
그 나무는 돌무화과 나무입니다. 
돌무화과나무는 루카 복음에서 ‘믿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돌무화과나무가 바다에 심겨진다고 하셨습니다.  
 
자캐오는 부자였지만 그래서 세상에서 재물을 바라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재물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자캐오는 재물이 아니라 주님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을 살릴 분임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바라는 것을 바꾸게 만듭니다. 
땅을 보다가 하늘을 보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말은 사랑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바란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바라면 사랑이 자신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자캐오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자캐오는 이제 돈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사랑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한 사람 안에 사랑을 좋아하는 마음과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는 만큼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사랑이 주님의 뜻인데 재물을 좋아한다면 사랑은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지 않는 집은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 심판 때 주님이 머무시는 집만 무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세속적 욕구가 사라졌다면 그 사람 안에 구원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렇듯 사랑을 갈망하여 재물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재물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살기를 원하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살기를 바라면서도 사형 당할 일을 추구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살기를 원하면 재물에 대한 욕구는 버려야합니다.  
 
사랑과 재물은 마치 날기를 원하는 마음과 눕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양립할 수 없는 욕구입니다. 
욕구가 본성이고 그 본성에 따라 죽은 다음에 머물게 될 위치가 정해집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내가 선택한 욕구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평상시 내가 생각하는 대상입니다.  
 
살고 싶다면 믿음의 나무에 올라 사랑만 생각합시다. 
그래야 사랑이 내 안에 머물고 사랑의 나라인 하늘에 머물 수 있습니다. 
재물은 좋아하면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이들은 죽음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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