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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18 조회수 : 374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 
 
제1독서 : 다니엘 12,1-3
제2독서 : 히브리서 10,11-14.18
복   음 : 마르코 13,24-32 
 
< 종말을 넘어서면 환난은 없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종말을 매우 두려운 무엇으로 여기고, 또 먼 미래에 올 자신과는 상관없는 무엇처럼 생각합니다.  
 
개인적 죽음이 미래에 온다고 하여 개인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오듯 종말도 누구에게나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꼭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바로 나에게 닥칠 수 있듯 종말도 그렇습니다.  
 
종말이 지금 당장 나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면 그것은 참다운 종말론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의 의미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해야 할 무엇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다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니 종말도 기쁜 소식입니다. 
문제는 세상의 종말이 나의 종말인양 미혹하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은 세상의 어둠 속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진정한 해방의 날입니다. 
나는 살고 세상은 죽는 것이 종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을 말씀하실 때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즉, 종말은 환난이 끝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던 해와 달과 별들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돈과 명예와 쾌락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사실 우리들이 환난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것이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종말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를 사로잡고 있는 어둔 세상인 것입니다.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라는 책을 쓴 유자와 쓰요시 씨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맥주 회사에서 나름 잘 나가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400억 원의 빚이 있는 회사를 억지로 떠맡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자기 마음대로 횡령을 하고 있었음에도 회사를 경험해 본 젹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켜보아야만 하는 처지였습니다. 
자기가 바보처럼 느껴졌고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졌습니다.
     
어느 날 전철이 올 때 몸을 전철 쪽으로 던지려는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까스로 참아내기는 하였지만 빨리 끝내고 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기는 울고 있고 아내는 빚 독촉 하는 사람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쩔쩔매며 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깨닫습니다. 
‘안 좋아봐야 파산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광우병 사태가 터졌고 한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믿었던 주방장도 병으로 잃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바닥을 치고 난 후였기 때문에 죽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라 여기고 억척같이 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6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됩니다.

이것이 종말입니다. 
밤의 종말이 종말입니다. 
나의 종말이 아닙니다. 
밤이 끝나는 것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것이 종말입니다.  
 
세상이 끝나도 나는 남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던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이 끝나버리니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나를 세상과 하나로 여기는데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인 것은 나의 자아이지 내가 아닙니다. 
세상과 내가 하나로 여기니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종말은 주님께서 나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떼어놓는 사건입니다. 
세상에서 죽어도 좋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복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종말이 곧 복음입니다. 
 
노아에게 종말은 복음이었고 롯에게도 그랬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모욕을 견뎌내며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상이 주어지는 것이 종말입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돔 땅에서 혼자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 소돔의 멸망이 곧 롯의 구원입니다.  
 
세상은 밤과 같습니다. 
낮이 오려면 밤은 사라져야합니다. 
그렇게 빛에 비해 어둠은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 내가 맞이해야 할 종말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을 말씀하시며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은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종말이 마지막 때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우리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복음일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은 바로 지금 나와 관련된 이야기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나라와 성전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이 태양이요, 달이요, 별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사가 와서 성전을 짓밟고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 사건이 그들에겐 더 없는 완전한 종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이 이스라엘의 종말이 전 세계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나라를 떠나 전 세계로 퍼진 주님의 제자들은 세계 곳곳에 하는님 나라를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망해도 됩니다. 
그리고 망할 것입니다. 
내가 만약 세상을 태양이요, 달이요, 별로 숭상하고 있지 않다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나에겐 환난이 끝나는 때입니다.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오는데 밤이 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은 빛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말을 기뻐해야합니다. 
세상이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아는 것이 복음이자 종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종말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종말의 복음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 멸망해야 할 운명을 지닌 사람처럼 두려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제이 골드버그는 실패를 모르고 성공가도만 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그동안 해 오던 일을 접고 자신이 좋아하던 야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고 회사에 사표를 냅니다. 
그리고 미국 내의 26개 프로야구 구단에 이력서를 보냅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쓰면 어떤 구단이든 이익을 보리라고 믿었고 좋은 응답이 많이 올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한 군데서는 아예 답장도 오지 않았고 나머지 25개 구단에서 거절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처음 실패를 맛 본 골드버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술에 빠져 절망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받은 거절 편지들을 액자에 넣어 벽에 붙였습니다. 
하나하나 읽기도 싫은 내용의 편지였지만 벽에 걸어놓고 보니 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벽을 장식하는 하나의 종잇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재기하였습니다.  
 
실패를 하면 그 실패를 액자에 넣어 또 수많은 실패 액자들 옆에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니 실패는 별거 아니었습니다. 
내가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 그 감정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난을 주는 마음으로부터 이별을 고합니다.  
 
다시 재기하여 그는 야구 장비를 파는 소매점인 베르지노 클럽하우스를 열었고 그것은 현재 미국 야구팬들에게 사랑 받는 매우 큰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세상을 별거 아니게 보게 될 때, 실패나 타인들의 판단에 무심하게 될 때 주님의 오심을 의미하는 종말은 나에게 복음이 됩니다.
그것만이 가치 있고 세상 것은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만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영원하기를 기대한다면 사라져버릴 세상엔 이별을 고해야합니다. 
진정한 종말의 의미를 알고 그 종말을 살아나가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멀어졌다면 예수님은 오늘 내 안에 재림하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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