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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04 조회수 : 408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복음 : 마르코 12,28ㄱㄷ-34

< 참된 예배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나의 뜻을 봉헌하는 것 > 
 
‘사랑받는 남편 10계명’이란 것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1.같이 자라-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같은 시간에 부부관계는 밤에 달려있다.
2.밥을 다 먹어라-맛있게, 맛있어 하면서,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3.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자-가로막지 말고 맞장구 쳐주자.
4.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하라-남편의 활기는 금방 아내에게 전달된다. 아내가 깨워야 일어나지 말고 미리 일어나 창문을 열어라!
5.처가에 가서는 싱글벙글 하라-갈 때는 선물을 잊지 말 것! 처가에 가서는  가장 늦게 나올 것.
6.동반모임을 즐겨라-부부모임은 가능한 한 참가하여 즐겨라. 밝고 예절 바르게
7.잘못했으면 곧 사과하라-곧 사과하라! 지금 곧.
8.아내 편을 들라-어쨌든 일단은 아내의 편을 들고 나서 잘잘못을 따져라.
9.생일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간 큰 남자!!
10.결혼반지를 빼지 말라. 
[출처: ‘사랑 받는 남편 10계명’, 블로그 코이네]
  
‘한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저런 노력을 해야 하다니.’
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제가 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저걸 다 한다고 해서 아내가 만족할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 주어야합니다. 
남편의 십계명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열 가지’로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거 다 빼고 아내는 남편이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요?
그리고 남편으로서 해야 하는 것, 성실히 일하여 돈을 잘 벌어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저 나머지 계명들은 어쩌면 기억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면 다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수많은 하느님의 계명 가운데 무엇이 핵심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 들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또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자신만을 사랑하며 돈을 성실히 벌어오는 것이라면, 하느님도 당신만을 사랑하며 이웃에게 잘해 주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들려면 이것은 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의 공동체에 속하게 만드는 지령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 마음에 들어 하느님 품 안에서 같은 공동체를 만듭니다. 
이 공동체가 교회이고 하느님 나라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데모집회에 한 번 나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집결해야 했던 곳은 서울시청 앞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철을 내렸을 때 한 여학생이 저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무언가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뭐라 쓰는지 몰라서 빤히 쳐다봤더니 또 다시 뭐라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뭐라 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라 쓴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 여학생이 주위를 살피며 조금은 화가 난 표정으로, 
“아~ 이거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는데 ... 집회 장소가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고요. 
빨리 그리로 이동하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명동근처까지 갔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보니 명동성당에 들어간 이들이 경찰병력에 둘러싸여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성당에 들어간 이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하늘나라 공동체에 섞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령을 따르지 않고 나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 여학생은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손바닥에 써 준 것은 계명입니다. 
계명만이 하늘나라에 도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당신 나라로 이끄시기 위해 지령을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 지령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모세는 이 지령을 가슴에 품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민족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민족들은 그 지령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뜻대로만 살고 싶어서 하느님까지도 ‘황금송아지’로 만든 상태였습니다.  
 
하느님을 소로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을 조정하는 주인이 되고 싶다는 의도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을 조정하고 싶은데 하느님의 지령에 관심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제 더 이상 쓸모없게 돼버린 계명 판을 깨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명이 깨졌다는 말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내 뜻과 반대됩니다. 
내 뜻을 버리지 않으면 하느님의 계명은 내 안에서 성취될 수 없습니다. 
계명을 주시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이들은 계명에 집중해야합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품에 안고 내려오던 모세는 그 계명을 어떤 마음으로 안고 왔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처럼 안고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한 계명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사랑을 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이 ‘다하는 마음’이 참된 예배입니다. 
나의 온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명을 위해 내가 봉헌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나의 봉헌은 이렇게 계명의 성취로 이어져야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예배를 봉헌하러 갑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처지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극진히 도와줍니다.  
 
하느님의 지령은 예배를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예배로 봉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령은 외면한 채 미사만 보러온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계명이 우리를 그분 나라에 들여보내 주는 것이지 외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제 그분의 계명을 알았다면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겠습니다.  
 
모세가 이 계명을 가슴에 품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듯이 우리도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결코 잊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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