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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31 조회수 : 419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복음 : 루카 13,22-30

<​ 진정한 만남을 위해 좁은 문을 지나라 >

만남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오면서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만남도 있고,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인상 깊게 남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만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는 사제라는 소명 때문에 한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나름대로 누군가를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 친밀하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도 아니기에 제가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깊이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씨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 한 자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인터넷으로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납니다. 
지금 집착하는 한 남자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사람입니다.  
 
몇 차례의 온라인 만남을 통해 직접 만나 술도 마시고 밤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밤을 지새우는 만남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귀찮아하는 남자에게 전화를 하고 남자는 매몰차게 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그 남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자는 단지 여자의 육체와 만나고 싶어 하고 여자는 사실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술과 폭력으로 어머니를 괴롭혔던 아버지를 지독히도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자녀들보다는 이 자매만을 사랑하여 수염 난 까칠한 얼굴로 비비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암이 걸렸을 때 극진히 간호하기는 하였지만 돌아가시고 나서 10년 동안 단 2번 찾아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싫은 마음도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로운 남자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매가 아버지와의 만남이 정리되지 못하면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태임을 잘 압니다. 
아버지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을 용서하고 포옹함으로써 풀어버려야 합니다. 
소화되지 않으면 배설되지 않고 그것이 오히려 병의 원인이 됩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비우는 작업이 전제됩니다.  
 
이를 십자가의 길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내 안에서 그 만남을 통해 죽어야만 하는 것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나의 것은 하나도 죽이지 않고 사람만 만나려고 하면 껍데기 관계만 남게 됩니다.

“이미 편안해진 방식에 몸과 마음을 가두지 마라. 
그러는 순간, 오직 그것만 원하게 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말은 영화 ‘아마데우스’, ‘백야’의 안무 총괄책임을 맡았던 미국 무용계의 여왕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말입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김남인 씨가 타프와 인터뷰할 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정상에 오른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프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침 5시 반, 옐로캡(택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에요.”
     
그녀는 무용을 시작한 후 5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5시 반에 이미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체육관으로 가서 온 몸과 정신을 깨웠다고 합니다. 
그녀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피곤할 때가 있고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울 때가 있지만 이미 와 대기하고 있는 택시의 문을 열고 앉으면 다시 이불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일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무용에 대한 태도가 그녀를 세계 최고 현대무용가로 만든 것입니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을 산책으로 시작했고 산책 중 머릿속에 스치는 영감이 있으면 항상 지니고 다니던 수첩에 바로 적었다고 합니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든 이런 태도를 지닙니다. 
노력 없이 맺히는 열매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는 노력이 자신을 죽이는 십자가의 노력입니다. 
오늘 복음대로라면 ‘좁은 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이 무용을 만나고 음악을 만나는 자세는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만나는 자세와 같습니다. 
그들은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가장 좁은 문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선택했습니다. 
그 태도가 자신이 만나는 일이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결정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온전히 죽을 준비가 되었다면 비로소 만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 대상이 하느님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50년 동안 새벽 5시 30분마다 하느님을 꾸준히 만난다면 분명 타프가 받은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자는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을 만날 때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그분 때문에 고통스러워지는 정도가 내가 그분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를 보여줍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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