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시를 쓰는 한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제게 “신부님, 이제 시를 못 쓰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 이유를 물으니 처음에는 시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며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시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는 잠시 접으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작가라고 하면 꽤 살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서는 글 쓰는 것으로 여유 있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을 비롯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이 작가의 재능을 꼬집으면서 다른 길로 가야 함을 이야기하지요.
“글로 어떻게 먹고 사니? 돈도 안 되는 일을 뭣 하러 하는 거야?”
이런 말을 자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글 쓰는 것을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하고 또 글을 쓰고 있는 저로써는 참으로 안타까운 말이었습니다. 글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만큼 나를 돕는 손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지켜야 할 대상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을 지키려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면서 단순히 그 사람이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다면서 포기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의 주연만이 존재 이유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힘이 되어주는 협조자가 없다면 그 주연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랑은 나를 주연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연을 더욱 더 빛나게 해주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어 진정한 협조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 모두가 하나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게 하는 그래서 모두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늘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시 힘이 되어주고 기쁨을 전해주는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이며,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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