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독서 : 갈라티아 1,13-24
복음 : 루카 10,38-42
<걱정하지 말고 생각을 하라>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에 나오는 사례입니다.
윌리스 캐리어(Carrier)란 사람은 미국 유명 에어컨 회사, Carrier의 설립자입니다.
그런데 그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백만 달러가 드는 일을 수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그 회사는 그 기술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캐리어는 수천 만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퇴사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엄청나게 걱정을 합니다.
막연한 걱정이 그를 집어삼켜 잠도 잘 수 없었고 먹고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걱정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도대체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게 뭘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분석해 보았습니다.
현실을 분석해본 것입니다.
종이 위에 이 실패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써보았습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직업을 잃을 수도 있어. 길거리에 나 앉겠지.’
최악의 상황을 쓰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도 올라왔습니다.
‘물론 회사는 2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지만 좋은 실험을 한 거야.’
‘근데... 어떻게 하겠어... 현실을 받아들이자.’
이때 바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걱정이 생각인줄 알았는데, 걱정은 자신을 사로잡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을 하게 되니 구체적인 방안이 떠올랐고 그 결과 2000만 달러 손해를 단지 2만 달러 손해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걱정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참조: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버리는 법’, 데일 카네기, 5분만에 책 한 권 읽기 – 유튜브]
걱정만 하면 걱정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걱정은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자아가 너무 강해 자아의 생각이 나까지 잡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뱀에 사로잡히는 것이 걱정이고 고통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아와의 대화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야합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아의 부정적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걱정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에 집중하는 상태를 ‘몰입’이라 합니다.
몰입을 하면 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에 자아로부터 벗어난 행복감을 맛봅니다.
칙센트 미하이 박사는 몰입에 대해 “그 상태가 지나고 나면 사람은 자신이 진정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들러는 “다른 누군가를 한 사람 정해놓고 매일 아침 눈뜨자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보라. 2주 만에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이 되고 우울하게 되는 이유는 자아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이고, 자아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어떤 일이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에 몰입하면 그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몰입이란 것 자체가 무아(無我)의 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집중하는 무엇이 세상 것이라면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계속 영화를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계속 일을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그러면 다시 걱정이 일어날 것입니다.
쾌락이나 일의 중독자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멈추지 않을 몰입의 대상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대상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 자아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원하시는 방식은 당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하와가 하느님을 바라보았다면 뱀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마르타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어떻게 봉사할까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이 두 자매의 상태가 바로 걱정을 하는 사람과 생각을 하는 사람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하는 행위가 바로 ‘신앙의 몰입’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잊지 않기 위해 예수님의 발치에서 계속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마르타는 여러 염려를 껴안고 살게 되고 마리아는 아무 걱정 없이 살게 됩니다.
마르타는 걱정을 하고 마리아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걱정을 몰아내려면 예수님께 몰입해야합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몰입하지 않았을 때 두려움이 생겼고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신앙의 고수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심을 잊지 않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단 한 순간도 주님의 현존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고수는 생각을 끊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루 열 번 주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면 그 숫자를 백 번으로 늘려보십시오.
그만큼 걱정이 아닌 생각을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타에서 마리아가 되는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