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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08 조회수 : 407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독서 : 갈라티아 1,6-12
복음 : 루카 10,25-37 
 
< 고수의 정석 > 
 
1980년대 이전 바둑의 최고 고수의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서를 한국-일본-중국으로 바꾸어놓은 한 사람이 ‘조훈현 9단’입니다.
     
조훈현 9단은 어렸을 때부터 바둑의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에 조훈현은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나 바둑을 두는 족족 패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일본에는 바둑의 수를 정리해 둔 ‘바둑의 정석’과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조훈현 9단은 창의력은 있었지만 기본기가 되어있지 않아 바둑의 정석을 배운 이들에게는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혼자 뛰어나도 역사 안에서 여러 고수들이 정리해 놓은 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일본인들이 역사 속에서 정리해 놓은 바둑의 정석을 공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과 어느 정도 대등한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넘어서려면 정석대로만 두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이 정석으로 두는 수를 읽고 한두 차례 창의력을 발휘한 수를 두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골목 상권을 살려준다는 백종원씨 프로그램에서 한 가게 주인에게 백종원씨가 지적한 것은 그들이 파는 기본적 메뉴에 대한 충고였는데 일주일 만에 다시 와서 보니 그 충고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신메뉴를 개발하여 그 앞에 갖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백종원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가게 주인에게 ‘기본’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팔고 있는 것의 맛이 기본이 안 되는데 신메뉴만 내어놓으면 무엇하겠냐는 말입니다.

자칫 고수들은 창의력이 발달하여 남들과 차별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기본 없는 차별화는 기둥 없이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차별화는 기본적인 구조에 장식만을 변형하는 것입니다. 
집이 버텨줘야 거기에 창의력을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집도 만들 수 없는 목수가 큰 건물을 짓겠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짧은 시간 출전하여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스포츠 스타가 ‘메이 웨더’라는 미국인 권투선수였습니다. 
그는 수비 위주로 경기를 하지만 지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펀치 한두 번 치는 것이 점수 차이를 벌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경기를 준비하며 매일 6시간씩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 펀치 연습을 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투선수가 하루에 만 번 이상씩 펀치연습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고수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기본기입니다. 
기본기가 안 된 상태에서 경기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연구해봐야 이런 선수에게는 당해내지 못합니다.

이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나는 왜 교회를 믿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면 그 주제는 성사가 교회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끝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손을 들고 ‘그러면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은 다 지옥가나요?’ 라는 식으로 질문합니다.  
 
왜 성당에 다녀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먼저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사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먼저 생각해주는 것이 자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문제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신앙의 고수가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거의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모세의 율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님은 왜 내려오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하느님도 이웃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기본임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도 그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고수는 언제나 기본에 충실합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율법은 대답해줄 수 없는 고수로서의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본당에서 열심한 봉사자가 자매들만 모여 있으면 듣기에도 민망한 농담을 하고 끼리끼리만 어울리려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말은 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농담을 하는 사람은 속에 그런 생각이 가득 찬 사람입니다. 
 
봉사를 많이 해도 기본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율법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지 않는 것을 본인도 알 것입니다. 
기본을 갖추지 않고서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기본이란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하는 수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말과 행위를 스스럼없이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매일미사에 나오고 성당에서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해도 신앙의 기본이 안 된 사람입니다.
자신 있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믿을수록 기본에서 벗어나지는 않는지 먼저 살펴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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