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독서 : 욥기 1,6-22
복음 : 루카 9,46-50
< 관심-참견-모함을 구분하는 기준 >
어느 날 임금님이 시골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한 목동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목동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목동의 착한 인성에 끌린 임금님은 목동을 나라의 재상으로 등용했습니다.
재상이 된 목동은 성실하게 사심 없이 일을 잘 처리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재상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자기가 살던 시골집에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신하들은 임금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재상이 청렴한 척하면서 아무도 몰래 항아리 속에 금은보화를 채우고 있다고 일러바쳤습니다.
임금님이 재상을 앞세우고 신하들과 함께 재상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광속에 있는 항아리를 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항아리 속에 들어있었던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재상이 목동 시절에 입었던 낡은 옷 한 벌과 지팡이뿐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사연을 묻자 재상이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본래 목동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은혜로 재상이 되었지만 제가 목동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따금씩 제가 입고 있던 옷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나에 대한 시선은 크게, ‘관심-참견-모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구분은 그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의 존재와 함께 정해져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관심만 가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참견만 하고 어떤 사람은 모함밖에 못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욥의 올곧음을 칭찬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나오더니 주님이 그에게 많은 재산을 주었기 때문에 주님께 충실한 것이라고 간언합니다.
주님이 그래서 그의 재산을 없애버리십니다.
그래도 욥은 주님을 찬미합니다.
사탄은 다시 그의 가족들을 치면 주님을 원망할 것이라 말합니다.
주님은 그의 자녀들을 치셨습니다.
그래도 욥은 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을 찬미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려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모함하기 위해 관심 갖고 참견합니다.
그러나 남의 일은 상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찬미하려고 하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그리고 욥을 위로해주겠다고 왔던 친구들은 욥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런 벌을 받는다고 욥을 판단합니다. 이것이 참견입니다.
겉보기는 타인에 대한 관심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수 없습니다.
그 본성상 타인에게 주는 모든 관심은 다 모함이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관심과 모함을 하는 두 본성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주는 대부분의 관심은 관심이라기보다는 참견입니다.
그래서 보다가 지치는 것입니다.
바로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본성이 관심만 가져줄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이웃에 대한 사랑만 남아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언하였습니다(민수 11,25). 그때에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있었는데 엘닷과 메닷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예언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라고 간언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말합니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생각하여 시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모함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상황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아보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어찌 보면 “너나 잘 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탄이 가지는 모든 관심은 모함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모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랑이 되려면 내가 먼저 천사가 되어야합니다.
천사가 가지는 모든 관심은 사랑입니다.
사실 많은 관심을 받아도 외로운 것은 그 많은 관심들이 모두 천사와 같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라도 한 사람에게 관심을 주더라도 그것이 사랑이 되도록 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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