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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30 조회수 : 510
9월30일 [연중 제26주일] 
 
민수기 11,25-29
야고보 5,1-6
복음: 마르코 9,38-43.45.47-48

<온유해지려면>


태초에 창조주께서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실 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당나귀는 자꾸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귀를 잡아당기시며 (당나)귀를 기억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벌이 자꾸 침을 쏘아서 많은 동물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번엔 벌이 침을 한 번만 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중 가장 불쌍한 것은 양이었습니다.
독사가 물면 물리고 맹수가 덮치면 잡아먹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양을 불러 은근히 물었습니다.
“너의 이를 옥니로 하고 네 발톱을 갈퀴발톱으로 바꿔 줄까?” 
 
“아, 아닙니다. 저는 육식하는 맹수들과 같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의 풀을 뜯어먹고 사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럼 너의 입 속에 독을 감춰둘까?”
“아이고, 그건 더 싫습니다. 뱀들처럼 미움을 받고 살기는 싫어요.” 
 
“그렇다면 너의 이마에 뿔을 달아주면 어떨까?”
“그것도 안 되겠어요. 염소는 걸핏하면 뿔로 받으려 하거든요.” 
 
양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이를 본 창조주는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큰 축복을 양에게 내렸습니다.
     
“오, 착하고 어진 양아!
너는 힘이 없어도 땅에서 대우를 받고 살게 될 것이다.
너의 이름은 어진이들의 상징이 될 것이며 어느 힘센 짐승보다도 자자손손 번성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주위엔 어떤 맹수도 접근하지 못하게 지켜줄 목자를 세워줄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따뜻함입니다.
양이 만약 사람의 성격을 상징한다면 바로 이 따듯함, 다른 말로는 ‘온유함’을 지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심리학자인 하아로우 박사가 한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가 젖이 나오지는 않지만 천으로 감아서 만든 어미 인형을 젖이 나오는 철사 인형보다 더 좋아한 예는 매우 유명합니다.  
 
동물도 그렇지만 인간도 무엇을 해주느냐보다는 따뜻함이 관계의 우선입니다.
누구나 차가워 냉소적이거나 너무 뜨거워 자주 화를 내는 사람보다는 온유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 온유함은 매우 획득하기 어려운 덕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온유해질 수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부드러운 척 하려다가도 어느새 화가 솟구치거나 쏘아붙이는 말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온유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처음 부분 예수님은 매우 온유한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아보려 했다는 제자들에게 다음부터는 막지 말라고 하시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 당신의 제자들이라고 하여 물 한 잔만 주어도 반드시 그 상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매우 자비롭고 따듯한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후반부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인데 무척 매몰차십니다.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시고, 손과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버리고 눈이 죄를 지으면 그것을 빼버리라고 하십니다. 
 
정리하자면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겐 그 삶에 있어서 철저함을 강조하시는 것이고, 아직 당신께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에겐 매우 온유하신 태도를 취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전적으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 하였습니다. 
 
‘외강내강’, 혹은 ‘외유내유’란 말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내적으로도 강하고 외적으로도 강하거나, 내적으로 유하고 외적으로도 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온유하면 이웃에겐 매몰차게 돼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온유하게 대처하면 그 탓을 누구에게든 돌려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매몰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온유하려면 그래서 자신에게는 매몰차야합니다.
어느 하나가 강해지면 어느 하나는 약해집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에겐 매몰차야하고 외적으로 매몰찬 사람이라면 내적으로는 물러터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하실 수 있으셨던 이유는 당신 자신이 온유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에겐 매몰차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 오히려 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내적으로 그만큼 많은 단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내 안에 잔인하게 만드는 자아가 있어서 그 자아를 매몰차게 죽이지 않으면 외적으로 온유해지기는 불가능해집니다.  
 
화와 짜증과 불만이 많아지고 언어가 거칠어진다면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해 너무 무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온유함은 자신과의 싸움의 대가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 온유함이 있습니다.
내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방법은 그 성령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해 철저한 기도시간을 지키는 일입니다.  
 
구약의 야곱이 에사우 앞에서 온유해 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밤새 주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씨름 마지막에 천사는 야곱의 정강이뼈를 분지릅니다.
그래서 덕분에 절뚝이게 되었는데 이로써 얻은 것이 온유함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을 의미하고 하느님과 씨름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거기서 오는 성령의 힘으로 나의 자아의 정강이가 부러지면 자아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온유하게 됩니다.  
 
그렇게 야곱은 에사우 앞에서 일곱 번 절하며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고, 에사우는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야곱을 용서하고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에사우가 주는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래서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금 지구를 매몰차게 대하여 후손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들에게 매몰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에게 포악하지 못하면 바깥으로 포악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지내다 화 한 번 잘못 내면 평생 어색한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화해하라는 식의 권고를 받아들이면 자신을 망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지 십자가를 거부하는 마음과 화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은 화해의 장소가 아니라 싸움의 장소였습니다.
자신과 화해하지 말고 포악해지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반드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포악해지지 않으면 누군가와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포악하라는 것이 자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손을 자르고 눈을 뽑으려는 강한 의지로 싸우라는 뜻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없이 이웃에게 온유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유함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전리품과 같음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온유함이 있어야 사람들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가 살 땅이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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