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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15 조회수 : 423

9월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독서: 히브리서 5,7-9
복음: 요한 19,25-27

< 고난으로 순종을 배운다 >
 
‘실락원’을 쓴 밀턴은 매우 다정다감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당파 부자의 가정에서 성장한 매리라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매리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밀턴의 청교도적인 삶이 싫었던 것입니다. 
 
“나는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밀턴의 엄격한 청교도적 삶은 견딜 수가 없다.”
밀턴은 인내심을 갖고 아내를 기다렸습니다.  
 
2년 후, 매리는 밀턴에게 돌아와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당시 매리의 가정은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밀턴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밀턴의 이 불행한 신혼시절은 ‘실락원’을 집필하는데 결정적인 소재가 됐습니다. 
자신의 낙원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명작을 완성한 것입니다.

아이가 자꾸 불에 손을 갔다 대면 그것이 뜨겁다는 것을 조금 느끼게 해 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느껴야 다시 손을 갖다 대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이는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갑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순종은 자신을 죽이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고난을 싫어한다면 순종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순종을 위해 유익합니다.  
 
우리가 지금 잘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고통의 열매입니다. 
고난을 통해 배운 것들입니다. 
두 발로 일어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입으로 하는 말 한 마디까지 모두 고난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아픔 없이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아기는 부모님께 순종하기 위해 수천 번의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면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고난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고난에 더 익숙한 사람이 더 순종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더 순종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만큼 큰 영광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자의 어머니가 되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드님도 힘드시지만 성모님도 힘드십니다.
아들은 눈에 보이게 못 박히시지만 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게 못 박히십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을 받을 수 있도록 고난에 잘 훈련된 분이셨기에 이 고통을 잘 견뎌내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해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순종하셨습니다(루카 2,34-35 참조).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 백배의 더 큰 고통이 따르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모 마리아는 불순종의 고통을 알지 못하십니다. 
우리는 시련으로 순종을 배우지만 성모 마리아가 우리와 다르신 것은 불순종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셨음에도 죽기까지 순종할 줄 아셨다는 데 있습니다.  
 
죄를 짓지도 않고 그 죄에서 오는 고통을 알기 때문에 순종한다면 그 믿음은 대단히 크다 할 것입니다. 
순종은 그래서 믿음입니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아멘!’하셨습니다. 
이 순종이 당신 영혼이 칼에 찔리는 고통을 가져왔지만, ‘아멘’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큰 행복임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순종이었습니다.

고난을 겁내면 순종은 불가능합니다. 
순종도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과 덜 고통스러운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뿐입니다. 
다만 불순종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순종의 고통을 택하는 것입니다.

높은 바위에서 메말라 가는 바다 가재가 있습니다. 
그 바다 가재에게는 바다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기 위한 고통을 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만일 바닷물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바다 가재는 그곳에서 말라 죽고 맙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다 가재는 자신의 1미터 앞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도달해서 살 수 있습니다. 
 
순종은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불순종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더해집니다.  
 
나에게 오는 고통만 잘 묵상해보아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순종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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