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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09 조회수 : 378

8월9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마태오 16,13-23 
 
‘나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초등부 저학년 아이들과 풀장에서 물놀이를 했을 때, 문득 예전에 성당 유치원 아이들과 풀장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유치부 아이들의 안전을 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허리까지 차는 물속에서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수영을 하는지 얼굴을 물속에 묻고 팔을 허우적대며 저었습니다. 
저는 풀장 밖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일어서면 물이 허리밖에 안 차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유치원 선생님이 그 아이를 보고 바로 물로 뛰어들어 아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이는 사정없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그럴 거면 뭐 하러 따라왔냐는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는 아이를 안고,  
 
“아이들은 허리도 안 차는 물에서도 익사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에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아,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구나!’였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이 허리밖에 안 찬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기준이지, 아이의 기준은 아닌 것이었습니다. 
 
어제 신앙학교 하는 곳에 가 있는데 장례가 났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나이가 29살밖에 안 된 청년이 친구들과 물놀이 갔다가 익사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 집에 가서 집축복을 해 주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젊은 아들이 죽었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열심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은 냉담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느님을 매우 원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미리 다녀온 수녀님의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이 어머니를 만나셨을 때,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크게 했기에...”라고 한탄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런 악상 때에는 강론준비가 참 난감합니다.
하루 종일 ‘그래도 위로의 말을 해 주는 강론이 되어야 할 텐데. 
이 위기를 어떻게 잘 헤쳐 나가지?’라는 마음으로 조문을 갔습니다.  
 
이런 때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줄 알면서도 저는 절을 하고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제가 신앙학교 가 있는 데,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런 말이 튀어나온 제 자신의 머리를 치며 바보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자녀를 잃은 어머니에게 내가 그 일 때문에 매우 놀랐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말인가?’ 
 
“얼마나 힘 드셔요.”라든가 좋은 말도 많은데, 제가 놀랐다는 말을 통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론 때문에 매우 고민이라는 것이 다 드러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돌아가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방금 교회의 수장으로 세우시고,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주셨던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시며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느님 일보다는 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이 곧 사탄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강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놀랐다.’는 말로 표현해 버린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마음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잘 풀어나갈까?’라는 내 자신의 생각만 해 온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 어머니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지금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말도 지금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미사 때,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제가 어떤 위로의 말씀을 해 드려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드리고 나니 ‘이것만큼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아픔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다.’ 싶었습니다.  
 
이런 말로 시작하여 상대의 마음을 더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준비한 강론은 무엇보다 제 자신이 먼저 만족스럽게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듣는 분들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이 된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은 두 번째였습니다.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것이 사탄의 생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상의 비오 성인은 자신의 ‘자아’를 ‘마귀’라고 했을 것입니다.  
 
나보다는 항상 상대의 입장을, 사람의 일보다는 항상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탄이 아닌 천사와 같은 마음을 지닌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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