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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5 조회수 : 361

7월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독서 : 코린토 2서 4,7-15
복음: 마태오 20,20-28

<​‘지금, 여기’의 영성>

요즘 김기태 씨가 쓴 ‘무분별의 지혜’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김기태 씨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삶의 의미를 쉼 없이 찾아 헤맸던 분입니다.  
 
수도회도 들어갔었고 배도 타봤던 사람입니다.
이런 방황하는 그를 끝까지 응원해 주었던 사람이 고등학교 윤리교사로 일할 때의 선배였다고 합니다.  
 
그 선배는 김기태 씨가 무언가 찾겠다며 헤매다닐 때 끝까지 응원해 주었고 지리산 토굴에서 수행할 때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싸서 직접 찾아와 주었고 절에서 50일 단식을 하며 가부좌를 틀고 있을 때도 비를 뚫고 찾아와 건강을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참 평화를 찾아 영혼의 모든 갈증이 사라졌을 때 이 기쁨을 가장 처음으로 그 선배와 나누고 싶어 전화하여 만났습니다. 
 
“아내, 그래? 공부가 다 끝났다고? 그럼, 당장 만나야지!” 
그렇게 기쁘게 만나 동동주 몇 잔을 걸친 후 선배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김 선생! 이제 말해 봐. 무얼 깨달았지? 깨달음이 뭐던가? 깨달은 진리가 뭐야? 궁금해 죽겠어.”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진리였습니다.”
그 선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김 선생! 누구나 다 아는 걸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돌아다녔다는 말이야?”
     
“예, 누구나 다 아는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저는 34년이 걸렸습니다...” 
 
[출처: ‘무분별의 지혜’, 김기태, 2부 3강 11] 
 
 
안다고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게 삶이 되었다면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를 막론하고 깨달음의 끝은 언제나 ‘지금, 여기’입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도 제 자리로 돌아와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이 가장 큰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다 자아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아로부터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다른 곳에 계시지 않고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항상 현재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인 야고보 사도의 축일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들이 마지막 때에 아주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에 다른 사도들의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예수님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함을 말씀하시며 그들도 따를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에 두 형제 사도는 예수님이 마실 잔을 자신들도 마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대단한 신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 실망스러운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야고보나 요한이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신도 모르니 그들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미래를 왜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현재를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만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지금 겸손한 사랑을 할 수 있으면 나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중은 지금의 연속입니다. 
지금 나중을 생각하다가는 지금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고3이 대학 생활만 생각하다가는 지금 공부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 내려놓고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 꼭 해야 하는 일은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김기태 씨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구하던 움직임을 그쳐 ‘지금’으로 돌아오니, 나 하나조차 감당할 길이 없어 언제나 힘들어하던 내가 다른 이의 마음속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함께 치유의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사람이 되었고,  
 
늘 ‘혼자’임을 한없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럽게 여기던 내가 어느새 많은 사람을 편안히 만나며 그들 안에 있는 참된 자유를 발견하게 해 주는 ‘쓰임 받는’ 존재가 되었으며,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로 사랑을 받지 못해 아무것도 진정으로 느낄 줄 모르는 냉혈한의 가슴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차가운 가슴 속에서 너무나도 깊고 따뜻한 사랑이 나왔다.”
     
이렇게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주 현재로 돌아와 현재를 살다보면 현재가 쌓이고 그러면 더 자주 현재를 살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한 연습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묶이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만 생각하며 살아봅시다.  
그러면 예수님 옆자리가 나로 정해져 있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 살면 이미 예수님 옆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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