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중국 철학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음양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음양오행의 원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선 음양의 원리를 대충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음은 어두움입니다.
빛이 없는 것이 어두움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빛을 만들면 온 세상은 빛과 어두움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빛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물들은 빛과 어두움을 일정 비율씩 차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늘에 있어도 빛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빛 자체도 있고 어두움 자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빛과 어두움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은 하늘이고 어두움은 땅으로 상징됩니다.
하늘은 남성으로 상징되고 땅은 여성으로 상징됩니다.
그러나 남성도 처음에는 여성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태아가 처음에 생성되었을 때는 모두가 여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힘에 의해서 임신 8주 정도가 되면 아이에게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분비되게 됩니다.
이 호르몬이 나오는 아기는 남성이 되고 그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아기는 여성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감소하게 되어 여성처럼 눈물도 많아지고 비활동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남성도 여성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향성 70% 여향성 30% 정도로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느 정도씩은 상대의 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음양이론은 이렇게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에서 새 생명이 움트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져 자녀를 출산하게 되는 것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어쨌건 모든 생성된 것들은 음과 양의 조화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안에 음과 양이 공존한다는 것에 주위를 기울여봅시다.
예를 들면 우리 몸도 음과 양의 결합에 의해 생성된 것이기에 음과 양의 기운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결합이기에 하늘이신 하느님의 성질인 ‘혼’이 있고 땅의 기운인 ‘백’, 즉 육체가 있습니다.
혼이란 양의 성질이고 몸이란 음의 성질인데 이것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도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음이 강하면 동시에 양도 강합니다.
즉 한 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이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매우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그 안에 동시에 두려움도 있습니다.
화는 양이고 그것의 음은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짖는 개는 두려움이 많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개는 잘 짖지 않는 개입니다.
그것들은 언제 물지 모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높아지고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그 안에 열등의식도 크다고 생각하면 되고, 남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크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반응은 양과 음 두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즉, 어떤 상황이나 나타나는 반응은 좋고 싫고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안 좋은 일이 닥치더라도 그 안에서 밝은 면을 찾아낼 수 있고,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안에서 부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당신이 항상 좋은 일만 하는데 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하소연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양 면을 보지 못하고, 단 한 두 명이 자신을 미워하고 반대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우리도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의 생각으로 꽉 차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보다 그 쪽 신경을 더 쓰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당연히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세상은 음양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음양의 성질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고, 또 우리가 만들어내는 상황도 음양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는다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어 평정심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시에 당연히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을 아시고 의연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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