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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8-07-05 조회수 : 351

7월5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오 10,17-22
 
<성령은 한 분이시다>
 
2005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로이스 깁슨이란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범죄를 해결한 아티스트입니다.
그녀는 범죄 검거율 99%에 육박하는 완벽한 몽타주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몽타주를 만들려고 가해자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하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사람의 얼굴을 조각조각 내어 보여주며 범인과 닮은 눈, 코, 입 등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만들어진 몽타주는 자신을 가해한 사람과 매우 달랐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로이스 깁슨은 자신이 직접 미대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얼굴의 형태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폭행을 당하는데 그 사람의 눈과 코, 입의 모양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 얼굴의 이미지와 목소리는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도 길거리에 나가 수만 장의 초상화를 사람들에게 그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릴 때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며 그 사람의 목소리에 따른 얼굴 형태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녀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자신이 이미 쌓은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그렸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기억상실에 빠져있는 아기가 유일한 목격자였는데 그 아기의 증언을 통해서 그린 몽타주 덕분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초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그린 몽타주는 누구라도 사람을 찾아낼 수 있도록 완벽하였기 때문에 쉽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기네스북에 오른 범인 잡는 예술가’, 서프라이즈]
 
사람의 얼굴의 부분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전체적인 얼굴의 이미지를 놓치고 맙니다.
얼굴은 눈, 코, 입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얼굴은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에서 시작해야지 부분에서 시작하면 그 얼굴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표정이 웃고 있으면 화를 내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또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습니다.
표정과 목소리는 그래서 한 세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얼굴 표정만으로도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로이스 깁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얼굴은 눈, 코, 입, 머리모양, 얼굴 형태 각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목소리와 표정을 포함한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기름, 물, 불, 바람, 비둘기, 혀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일도 매우 다양해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파악하려면 전체적인 성령의 이미지로 파악해야지 그 예언의 영과 가르침, 혹은 사도로 뽑으시는 영을 각각 다르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중풍병자를 보고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인간에게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능력인 성령님을 제한적으로 주신다고 믿는 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라고 하시며,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신 것이 곧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으신 것과 같음을 보여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힘이나 병을 치유하는 힘이나 같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과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면 병을 치유하는 것은 물론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마다 다른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받는 사람의 믿음의 정도와 필요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름이지만 오토바이에 들어가느냐, 자동차에 들어가느냐, 비행기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날게 만드는 것이 기름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각 사제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능력을 먼저 베드로에게 주셨고 또 부활하셔서는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사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 이후 가톨릭교회는 꾸준히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행사해 왔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녔다고 말을 해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 성령을 받고 한 무리가 모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녔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힘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다른 종교들은 감히 인간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정도만 성령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 모든 것을 주셨다면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조금만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하늘나라의 열쇠, 즉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데 죄가 용서받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모습이 여러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주지 않으셨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교회가 성령을 받았다면 하느님의 모든 권한을 받은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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