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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4-27 조회수 : 93

4월27일 [부활 제2주일] 
 
복음: 요한 20,19-31 
 
신앙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그동안 떠도는 소문에 대해 긴가민가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빵도 드시고 물고기도 드시는 모습을 뵌 사도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간 지니고 있었던 의혹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반대로 잠깐 다른 볼일 보러 나갔다가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던 토마스 사도는 얼마나 아쉽고 답답하고 억울했겠습니까?
토마스 사도는 그 답답함과 억울함을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던 토마스 사도였습니다.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왜 그리 믿음이 약하냐?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거냐?’며 호통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발현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자상하고 따뜻합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복음서 내에 토마스 사도가 자신의 손가락을 구멍 뚫린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넣어봤다는 표현은 없지만, 그의 성격상 끝까지 세심하게 확인해봤을 것입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구멍 뚫린 예수님의 옆구리에 직접 넣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런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토마스 사도의 늦었지만 장엄한 신앙 고백 앞에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말씀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사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옛날 토마스 사도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 단 한 명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그분께서 주신 믿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 하나 단단히 붙들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희미한 안갯속 같은 신앙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기쁨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한 주님 부활의 그 기쁨을 가슴에 안고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신앙 여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종종 체험하는 강렬한 신비 체험이나 은총 체험들은 평생 지속되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 혹은 두세 번뿐입니다.
그 은혜로운 체험을 가슴에 안고 믿음의 삶,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연못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폭우가 와서 진흙들이 많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연못이 흐려졌습니다.
원래 연못 안에는 크고 예쁜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었는데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잉어의 멋진 자태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방법은 무엇입니까?
진흙탕 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한 우리 영혼의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흙으로 흐려진 연못 같은 우리들의 눈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뚜렷이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의 잡다한 걱정거리들, 유혹 거리들로 우리의 영혼이 흐린 상태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진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작업입니다.
그 작업이 바로 침묵이요 기도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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