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 [부활 제2주일]
요한 20,19-31
회복 탄력성에 이르는 방법과 부활에 이르는 방법은 같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신시켜 주시는 내용이 복음으로
나옵니다.
왜 예수님은 토마스에게 따로 나타나시지 않고 여드레나 기다리셔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한 토마스가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머물 줄 알았고 보상을 받았습니다.
토마스 사도가 믿음이 부족한 사도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만큼 부활에 대한 갈망을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부터도 부활에 대한 희망을 키우는 방법이 있고, 이 방법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부활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김주한 교수가 말하는 ‘회복탄력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 서두에는 전신마비라는 극심한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간 한인 지질학자 이상묵 교수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상묵 교수는 45세의 나이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공동으로 야외 지질조사를 수행하던 중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라는 중대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였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마치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 회복되는 사람의 특성입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모두가 가진 것은 아닙니다. 마치 유리공처럼 바닥에서 부서져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상묵 교수는 어떻게 스스로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일어설 수 있었을까요?
과연 혼자 힘으로 가능했을까요?
김주환 교수의 책에는 회복탄력성 이론이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실험이 소개됩니다.
바로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모든 아기들(약 700명)을 대상으로 40년 가까이 추적한 종단 연구입니다.
이들 중 약 1/3(약 200명)은 출생 시 합병증, 극심한 가난, 부모의 불화나 정신 질환 등
심각한 어려움 속에서 자라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고위험군 아이들이 대부분 문제아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이들 중 약 1/3(고위험군 전체 중, 즉 약 70명)은 역경을 딛고 유능하고 안정적인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에미 워너는 이 아이들을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 중에서도 특히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았던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받아주며 사랑해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아이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었다는 점입니다.
이상묵 교수에겐 그를 믿어주는 공동체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사고 직후부터 병간호, 재활 과정, 그리고 일상생활 적응까지 아내의 헌신적인 돌봄과 정서적 지지가 없었다면 회복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자주 언급됩니다.
서울대학교 측에서는 교수님의 복귀를 위해 연구실 및 강의실 환경 개선(휠체어 접근성 확보 등), 보조 공학 기기 지원 등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수직을 유지하고 연구 및 강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이상묵 교수님이 연구와 강의를 재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입으로 조작하는 특수 마우스와 같은 보조 공학 기기입니다.
이러한 기술의 개발과 적용, 그리고 교수님에게 맞게 기기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지원한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의료진과 재활 전문가들, 그리고 제자 및 학생들의 격려와 도움이 컸습니다.
이 안에서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그 믿음대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의 믿음 안에 머무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듭니까?
전에 ‘이승복’ 박사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로 올림픽 출전까지 할 수 있었지만, 연습 중에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상묵 교수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선교사가 “당신에게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믿음에 머물려고 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여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존스 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공동체를 통해 전수됩니다.
아주 천천히. 그래서 어떤 믿음을 가지려면 그 공동체에 머물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절망에 늪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 가운데 머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토마스 사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지 않았지만,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믿고 싶어서 머물 줄 알았고 일주일 동안 다른 사도들의 믿음이 그에게 스며들어 결국엔 부활한 예수님을 뵙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여인들이나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을 당신 사도들에게 가서 알리라고 하셨을까요? 믿음이 교회의 성직자들 안에 모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성직자들 안에 머물면 그 믿음이 전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조금은 빛에 눈이 익숙해져, 완전한 빛이신 분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많은 순교자들이 있지만, ‘마리아 고레티’ 성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수십 번 찌른 알렉산드로를 용서하고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감옥에서 분노와 증오에 싸여 있는
알렉산드로에게 나타나 그를 회개시켰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천국에서 온 마리아 고레티를 보았고 그 부활의 믿음 안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수도원에서 궂은 일을 하며 평생을 보속하며 홀로 살았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우리 부활에 대한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게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하는 존재들이니까, 굳이 생존을 위해 돈과 명예나 육체적 욕망을 채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이 그렇듯이, 믿으면 믿는 대로 됩니다.
부활도 부활을 믿는 공동체에서 견디며 머물면
믿는 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