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어르신에게는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1) 자기 모습 그대로에 만족하며 특별한 욕망 없이 사는 사람. 내면의 평온함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자기가 살아온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회로 가득한 사람. 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에 친구가 없습니다.
3)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얻는 이야기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매력적이고 함께할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을 얻습니다.
4)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 긍정도 부정도, 또 교훈도 없습니다. 이런 분과 대화하면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갖고 싶습니까? 아마 최고는 3번 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나도 또 주위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힘들다면 1번도 괜찮습니다. 내면의 평화와 지혜 역시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번 유형이 많아 보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남 탓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집니다. 그리고 4번 유형도 심각합니다. 어떤 교훈도 없는 공허함만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3번과 1번의 유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함께할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침묵할수록 1번의 모습도 깨닫습니다. 조용히 침묵하며 기도와 묵상을 할 때, 평화와 지혜를 얻습니다. 이런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도 엿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에 제자들은 부르심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결과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 칠 곳을 알려 주셨고, 그 결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아직 큰 기쁨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부끄러웠는지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옵니다.
부활의 기쁨이 컸다면 예수님을 향해 곧바로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잡은 고기 그물을 팽개치고 예수님께 달려가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직 그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배고픈 자신들을 위해 빵과 구운 물고기까지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얼마나 목이 메었을까요? 자신들은 예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는데도, 꾸짖지도 않고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시니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번과 1번의 유형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우리도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말이지요.
오늘의 명언: 삶은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존 호머 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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