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음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는, (어제의) 눈먼 이 치유 이야기에 이어, (오늘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제자들의 신앙고백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60km 정도에 위치한 카이사리아 필립피, 오늘날의 바니아스를 향하십니다.
물이 매우 귀한 팔레스티나 땅에서, (헤르몬산의 눈이 녹아 석회암 암반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지하수 형태로 분출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인) 이곳만큼은 물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여러 곳에서 분출하는 이 지하수들이 모여 요르단강 상류를 이루고, 끝내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가 이스라엘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수와 같은 이 지역에서 제자 양성 과정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 전개됩니다.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후, 늘 곁에 두시고서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기 위한 차원에서 당신의 신원에 대하여 여쭈십니다.
그러나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직접적인 질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간접적인 질문으로 열립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시는 질문으로 인식됩니다.
직접적인 질문이었다면 잘못된 대답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텐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물으시니 전해 들은 이야기를 취합해서 쉽게 답을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 세례자 요한, 또는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 아니면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정리해서 답을 드립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정말 묻고 싶으셨던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열두 사도를 대표하여 베드로가 나섭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묻고 싶으셨던 질문만큼이나, 정말 듣고 싶으셨던 이 신앙고백 앞에서, 예수님은 함구령, 곧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이르십니다.
이제는 제자들이 당신이 누구신지 어느 정도 알아보게 되었지만,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복음의 단계적 치유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그 시간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시간입니다. 스승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차 수난/죽음/부활 예고 말씀의 배경이며, 이 예고 말씀은 2차, 나아가 3차에 걸쳐 반복될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에 대한 체험 또는 수용이 없다면, 열두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조차, 사탄 곧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실은,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것을 보면, 대상은 열두 제자 모두입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 우리에게, 당신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시며,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똑같은 신앙고백을 듣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고백 속에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늘 스며 있는 고백, 더는 주님의 함구령이 필요 없는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어떠한 수난과 죽음의 현실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부활의 영광을 희망하며, 당당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펼쳐나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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