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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7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1-16 조회수 : 116

하느님 나라와 용서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본 적은 없어도,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지명은 그래도 우리에게 친숙한 편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일 것입니다.

유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기는 하나 유다교 회당과 (내일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관이 있었던 걸로 보면, 예수님 시대에는 잘 알려진, 제법 규모가 컸던 마을로 추정됩니다.

 

이 마을에서 예수님은 오늘 중풍 병자를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치유 기적에 앞서, 예수님은 여전히 가르치심으로,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심으로 시작하십니다.

가르치시는 목적이 무엇일까?

현실적으로는, 육체적 병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중풍 병자가 치유의 대상이기는 하나, 이미 또 다른 영역의 치유를 겨냥하는 듯합니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중풍 병자가 어떻게 예수님 앞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사정을 살펴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걸을 수 없는 상태의 이 병자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고, 병자의 고통에 가엾은 마음으로 늘 함께했던 이웃들은 흔쾌히 그를 들것으로 옮겨 예수님 계신 곳까지 당도하기는 했으나, 많이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장애물 앞에 난감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서 방법을 찾아냅니다.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내려 보내는 진풍경을 연출합니다. 열성이 아니라 극성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의 간절한 마음 이상으로, 바로 그 선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즉각적으로 치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증거이며 보증입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는 사람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율법 학자들입니다.

구약시대는 물론 신약시대에도 현세적 상선벌악 사상, 곧 현세에서 이미 ()에는 (), ()에는 ()이 뒤따른다는 사상에 젖어 있던 유다인들, 그 가운데서도 율법 학자들은 현세의 병을 포함한 모든 불행 요소들을 죄의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따라서 병의 치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바로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이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과는 동일하다 하더라도, 영적인 치유가 육체적인 치유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사실 육체적인 치유가 주어진다 하더라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는 영적인 치유가 결여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치유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풍 병자의 치유 기적 앞에 모든 이가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율법 학자들만 측은하게 보일 뿐입니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었으나, 예수님의 복음 전파 활동 내내 반대와 적대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 나라와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 속의 중풍 병자처럼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 때 망설임 없이 도움을 청하는 용기,

이웃이 도움을 청할 때 주저함 없이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삶을 다짐하며,

모두 함께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체험하고 이 나라를 널리 알리는 가운데, 즐겁고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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