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가르침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가파르나움에서, 지금은 폐허 상태로 남아 있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치십니다.
복음서를 읽어내려가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행적들, 그 가운데서도 아무래도 수많은 기적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쏟게 되지만, 예수님은 무언가를 행하시기 전에 먼저 무언가를 가르치신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 행적이, 또는 그 기적이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충족시키는 수준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성자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관한 믿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이 믿음에 대한 보증으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믿음과 거리가 먼 곳에 기적 행사가 인색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마태 13,58 참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가르침이나 행함에서, 나아가 봉사에서도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 권위는 화려한 화술이나 놀라운 식견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율법학자들, 소위 라삐들은 율법 전문가들로서 가르치는 일에는 이름 나 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이들의 가르침 자체는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말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행실은 따르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마태 23,1-5).
결국 권위는 말씀을 실천에 옮기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로서,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하신 그대로 실천에 옮기시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놀랍게도 마르코 복음서에는 더러운 영이 예수님의 신원을 이미 알고 폭로하려는 현장이 여러 차례 발견되며, 그때마다 주님은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신원, 곧 이분이 누구신가?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 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계시되셨음을 알고 있지만, 군중들에게는 아직 비밀 사항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제자들이(마르 8,30), 나아가 이방인들을 포함한 청중들이(마르 15,39) 당신을 메시아로 고백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악령들은 그분의 신원을 미리 폭로해서 구원사업을 방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니, 함구령 곧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는 명령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실현에 어깃장을 놓으려는 악령 제압은 하느님의 나라 건설의 기초 단계임이 밝혀집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선 거짓 소식을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엊그제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반성하고 다짐했듯이,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초대받은 일꾼으로서, 건설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일소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가운데, 예수님처럼 권위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자랑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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