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 월요일]
복음: 마르 1,14-20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뒤집는 분이십니다!
선구자 요한이 무대를 잘 꾸며놓고 구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일종의 바톤 터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한이 집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4-15)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인류 구원 사업의 첫 협조자인 초기 사도단을 부르십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네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제자단을 부르시는 광경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볼 때, 정말이지 전격적이고 뜻밖의 대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잘 배운 사람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 대사제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열심히 갈릴래아 호수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그물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물을 손질하여 내리고 있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시고, 자신들을 눈여겨보시며, 이윽고 당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제자들의 성소 출발점을 묵상하니, 어찌 그리 제 성소 여정과 판박이인지 놀랄 지경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하루 온 종일 설계실에 앉아 도면을 바라보고, 도면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는 갑작스레 제 뒷덜미를 잡고 낚아채셨습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난감하고 당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저는 수도 생활에 대해서는 단1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많이 아플 때였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데, 나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인데, 나같은 사람도 수도자가 되고 사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엄청났습니다.
사실 제 학창 시절 내내 생활 기록부에는 늘 이런 표현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극히 내향적이고 소심한 성격임.’ ‘남앞에 나서기를 힘들어하니 발표력을 키울 필요가 있음.’
어딜 가면 늘 구석 자리를 찾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도 잘 하지 않고, 하루 온 종일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제 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런 저를 부르시고,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저를 단련시키셨습니다.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저를 집어 넣으셔서 재창조하시고 당신 말씀의 봉사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뒤집는 분이십니다.
당신 사업의 협조자로 완벽한 사람, 똑똑한 사람,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저처럼 한없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성탄 사건은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깊숙이 개입하신 특별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구차스럽고 죄투성이인 우리 한명 한명의 인생 여정 안에도 분명히 육화강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이 깊은 상처 사이에 탄생하십니다.
때로 따분하고 한심한 우리 각자의 하루 하루 그 안에 탄생하십니다.
때로 너무 스치스러워 얼굴을 들기조차 힘든 죄스럽고 남루한 우리 삶 속에 탄생하시고 현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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