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헤르베르트는 책 읽기의 무용함을 말합니다. 누군가 그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그 책들이 수백만 명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그 책을 읽은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고, 솔직히 말하면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푸념했습니다.
헤르베르트의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 사장님께서도 요즘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책을 사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지요.
도움이 되지 않는 책 읽기인 것 같지만,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가 넓어집니다. 작가의 상상력에 저의 상상력을 더해서 새로운 삶을 떠올려 지금을 다르게 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작가의 통찰에 공감과 비판을 반복하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일회적 말씀이 아니라, 지금에도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말씀입니다.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묵상을 통한 마음의 변화로 지금도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또 어느 성경 말씀인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읽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자기변호일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변화는 예측하여 대비하면서, 절박하게 닥친 시대의 변화는 왜 올바로 읽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십니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위선자들아~”라고 하시지요. 읽을 수 있음에도 읽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각종 전례를 통해 주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더 중요하다고, 바빠서 주님을 알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두 위선적인 모습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분명히 마지막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심판자 앞에 섰을 때 과연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될까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모두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단순히 이 세상 삶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사항이 됩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명언: 해안이 시야에서 사라져도 괜찮다는 용기가 있어야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헤엄칠 수 있다(윌리엄 포크너).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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