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원인 모를 불안 해결법
오늘 예수님은 세상 것들은 예표를 보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면서도 인간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작은 잘못이 쌓이는데도 자기 잘못을 바꾸려 하지 않으면 결국 큰일을 벌이고야 만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방치하기 때문에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이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것입니다.
세상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미쳐서 큰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구멍이 큰 둑을 허물어뜨리듯이 큰 잘못도 다 작은 것들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점점 나빠지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왜 알아채지 못할까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조금씩 끓이면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죽고 만다고 합니다.
그 변화를 느껴 재빠르게 물 밖으로 뛰어나오면 살 것이지만 작은 변화는 좀처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개구리에게 온도를 느끼는 피부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분명 그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동차에는 많은 계기판이 있습니다. 연료게이지도 있고 알피엠, 또 속도게이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보는 것은 속도게이지입니다.
다른 것들은 가끔만 보면 됩니다.
그러나 연료게이지만 보다가는 속도에 무감각해져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이 말씀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마지막 심판 때 주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도 우리가 천당 갈지, 지옥 갈지 이 세상에서부터 심판해 주는 우리를 ‘고소한 자’가 있습니다.
재판에서 말하자면 구형을 때리는 검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검찰과 협의가 이뤄지면 재판은 하나마나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부터 우리를 고소하는 검찰이 누구일까요?
그 고발하는 자는 바로 ‘양심’입니다.
양심은 우리가 설계도대로 살아가는지 심판하는
측정기구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가 병이 들어도 아프지 않은 상태와 같습니다.
양심이 심판하는 기준은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기준과 같습니다.
그 심판기준은 그분의 계명입니다.
곧 이웃 사랑입니다.
사람은 이웃 사랑의 계명과 어긋날 때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이 불안은 심판 때 구원을 못 받는 것으로 확증 받게 됩니다.
얼마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을 만났습니다.
70세가 넘어서 처음으로 가신 것입니다.
많은 준비를 하였지만, 처음엔 몸도 아프고 40년 이상 껴 온 반지는 물론 많은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이 길에서 버리게 되는 것은 결국 ‘불안’이라고 합니다.
가장 혼자가 되는 시간임에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지만, 나중에는 이 길이 끝나는 게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평화를 가진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나눔’입니다.
산티아고 성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무언가 쓸모없는 것까지 지고 가는 게 무겁고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숙소마다 그곳에 자고 간 이들이 필요 없는 물건들을 두고 간 것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스님은 빈손으로 와서 버리고 간 물건들만 사용하며 끝까지 완주하였다고 합니다.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의 목적지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지옥입니다.
그럴 때 양심에서 불안한 감정을 내보냅니다. 이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양심의 문제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고 유의배 신부의 방 안에 붙여논 글을
다시 상기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을 때 두려움이 없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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