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조카가 많습니다. 갓난아이 때부터 봐왔던 이 조카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결혼을 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조카들이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면서 제게 “할아버지 신부님!”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그 순간 ‘나도 늙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거울을 봅니다. 아직 검은 머리가 훨씬 많지만, 흰 머리카락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또 얼굴의 주름도 많아지고, 깊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외모만 봐도 분명 늙었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 듦의 결정적 표지가 있다고 하더군요. 삶에서 설렘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소풍이나 수학여행 전날의 설렘이 생각납니다. 신학교 입학할 때의 설렘, 사제가 되었을 때의 설렘, 인사이동 되어 새 부임지에 갔을 때의 설렘. 그런데 이제 그 설렘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설렘 대신 커진 것이 있다면 걱정이 아닐까요?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설레십니까? 사실 25년째 묵상 글을 쓰면서 매번 새로움을 느낍니다. 똑같은 복음 말씀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금 상황에 따라 새로워집니다. 세상 것에 대한 설렘은 사라지고 있는데, 주님 말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렙니다. 하긴 주님 나이에 비한다면, 지금 나는 ‘점’에 불과하니 설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까요?
설렘을 느끼려면 더 알아야 하고, 더 자세히 봐야 했습니다.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서 설렘을 사라지고 걱정만 늘어납니다.
젊게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설렘을 갖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더 알려고 노력하고, 더 자세히 보면서 보다 젊게 사는 우리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어떤 종이 충실한 종이라면서 주인에게 칭찬받겠습니까?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시지요.
깨어 있는 이 종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시려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다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습니다. 주인이 띠를 매고 그 종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종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설렘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단,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당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시선을 마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진정으로 행복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의 행복은 긍정적 믿음,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나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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