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1,42-46
정작 필요한 정결은 내면의 정결, 마음의 정결, 눈의 정결입니다!
오래전부터 유다인들이 목숨 걸고 준수해오던 정결예식, 사실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팬데믹 시대를 거쳐오면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손을 잘 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정결 예식은 얼마나 극단적 형식주의로 치달았던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결 예식은 한마디로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규칙입니다.
특히 자칭 거룩한 존재로 여겼던 바리사이들은
정결례에 관한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규칙이 또 규칙을 낳고, 또 규칙을 낳았습니다.
탈무드 제1부의 6권 전체가 씻는 규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 갔다가 귀가했을 때, 아주 엄한 정결례 규정이 적용되곤 했습니다.
시장을 다녀오면 죄인이나 이방인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기에, 50리터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물통에 팔꿈치까지를 넣어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흐르는 물에 팔을 씻어야 했습니다.
랍비들은 이런 규정을 실천하기 위해 4마일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사이들, 별것도 아닌 손 씻는 예식은 목숨 걸고 지켰지만, 정작 중요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은 소홀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정통 유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죄 없다고, 깨끗하다며 어깨에 힘을 주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집단 세심증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여겨집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모습 앞에 율법의 주인이자 자유로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합니다.
그들이 목숨처럼 소중이 여기던 정결례를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 파기하십니다.
보란 듯이 손도 안 씻고 그냥 음식을 드십니다.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될 나병 환자의 손을 서슴없이 잡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정결은 내면의 정결, 마음의 정결, 눈의 정결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 안에서도 작은 정결 예식의 순간이 있습니다.
입당 후 곧바로 이어지는 참회 예식의 순간, ‘제 탓이요.’를 세 번씩이나 외치는 그 순간이 어찌 보면 작은 정결 예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기 전, 사제는 복사가 가져다주는 물그릇에 손을 담그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작은 정결 예식을 행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돌아보니 정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손을 씻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손 씻는 예식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가 제 삶 안에서 의식화되고 성취되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손 씻을 때 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 마다 이 미사 안에 재현되는 파스카 신비를 제 삶 안에서 구체화시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미사 때마다 어제의 나를 죄와 종살이의 땅 이집트에 내려놓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홍해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이자 구원의 땅 새로운 이스라엘로 넘어와야겠습니다.
기도나 묵상, 로사기오 기도나 각종 전례 행위 등 영적 의무를 실천하는 기회 때마다 매일 회개하고 순간순간 새로워져야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사람으로 끝없이 거듭나야겠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예수님께서 질타하시는 위선과 형식주의, 율법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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