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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뜻대로 되지 않음에감사합니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2-09-30 09:11:27 조회수 : 585

대학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 저는 여느 남학생들처럼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느 군대에 들어갈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무 소방과 카투사에 지원했으나 차례로 떨어지고, 세 번째로 지원한 공군으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공군에서 자대 배치를 받을 때는 집과 가까운 부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최대한 가기 싫었던 강릉 비행단으로 배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하필 그 비행단 안에서도 가장 가기 싫었던, 소위 일 많고 바쁜 부서에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억울했습니다. 강릉 비행단으로 가는 길엔 심지어 눈물도 찔끔 났습니다. ‘내 군생활은 왜 이렇게 꼬인 것일까? 왜 이렇게 내 삶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일까?’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전역하던 날, 부대 정문을 나오는 버스에서 저는 그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흘린 눈물의 의미는 2년 전과 180도 달랐지요. ‘영원히 잊지 못할 행복을 준 고마운 곳,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며 들어간 곳에서 감사함의 눈물을 흘리며 나오다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전역 날 되돌아본 저의 군생활은 감사함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감사함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제가 군에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군에서 난생처음 성당에 다니다가, 일병 때 강릉 비행단 안의 군종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당 주방에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 설거지를 도맡아 하신 대대장님과 제일 낮은 계급의 병사들에게 가장 큰 관심과 배려를 보이신 신부님 등 바깥에서 보면 바보 같고 미련하게 사는 천주교인들의 모습에서 저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행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때 강릉 비행단 안 갔으면 어쩔 뻔했지?’ 더 나아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었으면 어쩔 뻔했지?’ 인생이 어쩜 이렇게 뜻대로 풀리지 않을까 싶던 시기에 저는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행복을 얻었습니다. 저의 좁은 생각으로 갈망하는 것을 성취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신 그분께서 마련하신 다소 힘들고 고단한 길을 걸을 때, 그곳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제가 이미 엄청난 행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저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 뜻대로 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불만도 많고, 투정도 많이 부린 저였지만, 언제나 당신이 옳았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늘 좋은 몫을 주시는 분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그것이 비록 세상 눈에는 고통과 슬픔일지라도, 당신께서 주시는 좋은 몫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님, 저는 세상의 행복이 아닌 당신의 행복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글ㅣ추준호 예레미야(가톨릭 생활성가 찬양크루 열일곱이다’ 보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