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회 생명의 날 담화문
‘삶의 질’이 생명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올해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회칙 ?생명의 복음?을 반포하신 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회는 일찍이 인간의 존엄성과 그 전반적 소명에 부합하는 윤리를 제시하고자 노력해왔고(?생명의 선물? 1항), 특히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나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에 위임된 기본적인 사명을 꾸준히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 기술 분야의 놀라운 성과로 인간 생명의 기원과 죽음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새로운 윤리적 차원의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포함하는 ?생명의 복음?을 우리 시대를 위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회칙 ?생명의 복음?이 ‘죽음의 문화’로 규정하는 오늘날의 생명 경시풍조의 배경에는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생명의 복음?, 21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기승은 인간들에게서 창조주 하느님을 빼앗아버렸고 하느님 의식의 실종은 결국 인간 의식, 곧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마저도 빼앗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생명을 더 이상 하느님의 빛나는 선물로,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따라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존중’해야 할 ‘신성한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생명 그 자체는 단순한 ‘사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24항)
최근 우리 사회 도처에서 안락사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소위 ‘삶의 질’, 또는 ‘품위
있는 죽음’ 등의 이유를 내세워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습니다.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기 때문에 영양 공급을 중단하여
죽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이라든가, 말기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등 반생명적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매우 커다란 고통으로 이해하여, 하루 빨리 벗어버려야 할 무거운 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안락사를 마치 최선의 선택인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말기환자의 주위에서는 ‘삶의 질’의 이유를 내세워 불필요한 치료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치료나 영양공급까지도
무의미하다고하여 그 중단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임종을 앞둔 말기환자라 하더라도, 비록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간호가 필요하고, 유용한 영양공급과 함께 의약을 투여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 치료받고자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온당한 소망이 병자를 돌볼 의무를 지닌 사람들로부터 거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안락사에 관한
선언?, 4)
인간의 생명은 인간이라는 그 사실 때문에 고유한 가치를 지닙니다. 곧 인간은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로서 인간을 평가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을 소유가치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경제적 효율성, 무절제한 소비주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쾌락으로 해석됩니다. 더 나아가 인간 상호간의 심오한 관계, 영적 및 종교적 차원과 같은 더 심오한 차원들은 무시되고 맙니다. (?생명의 복음? 23항)
‘삶의 질’로 인간의 생명을 판단하려고 하는 시도는 이미 질 높은 삶을 살고 있거나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을 참된 인간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삶의 질’이라는 개념은 보호받을 인간의 권리와 인간을 보살필 사회의 의무를 세우는 윤리적 기준이 될 것이고, 나아가 인간을 정의내리는 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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