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이상훈씨 가족이 성가정 축복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진주씨, 이상훈씨, 한나양, 지윤양.
매일 밤 9시, 이상훈(요한 세례자·38·제2대리구 오포본당)씨 집에서는 알람이 울린다. 소리를 들은 이씨와 부인 김진주(제노비아·43)씨, 지윤(아녜스·15), 한나(클라라·11) 두 딸은 하던 일이나 공부를 멈추고 함께 모여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친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2019년부터 주교회의가 전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에 참여하면서 시작한 가족 기도다. 이제 ‘밤 9시 주모경 저녁기도’는 이씨 가족의 ‘기도 루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1년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는 이씨는 “밤 9시 알람 소리를 들으면 모여서 기도하다 보니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업무로 귀가가 늦을 때는 집에 있는 가족들끼리 기도한다. 수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하게 이어온 기도는 부모와 자녀들이 하느님 안에서 더 돈독해지고 소통하도록 이끌고 있다.
큰딸 지윤양은 “기도하려면 만나야 하고 얼굴을 맞대게 되니까, 그때 같이 기도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마음도 털어놓게 된다”며 “사춘기를 겪으며 심리적으로 어려울 때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도가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저녁기도 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과 함께 가정을 위한 기도, 부모와 자녀를 위한 기도, 사제·수도자를 위한 기도도 바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족이 함께 평일미사에 참례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 가족의 신앙은 자연스러움, 당연한 것, 생활에 배어있는 삶의 한 부분으로 요약된다. 부부 모두 가톨릭 집안에서 모태 신앙으로 성장한 것이 우선적 요소이지만 이씨의 경우 주일학교에서 체험한 ‘신앙 속의 즐거움과 기쁨’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 경험은 본당 주일학교를 다닌 후 주일학교 교사 활동으로 이끌었다. 군 복무 기간에는 군본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도 했다.
부인 김씨는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성당에 안 가면 밥을 못 먹었다”는 김씨는 “어릴 때 매일 가족들이 저녁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친 기억이 있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더라도 묵주기도를 봉헌하곤 했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런 신앙 이력은 자녀들에게도 좋은 신앙의 장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부부는 “양가 부모님의 기도가 우리 가족 신앙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며 “어릴 적 가정에서 성당에서 가족·친구들과 함께하며 새겼던 하느님과 교회의 선한 이미지를 아이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믿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신앙의 표양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은 어차피 보는 대로 배우니까, 엄마 아빠의 신앙을 보고 자라면 ‘성당 가라’고 말로 하는 것보다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부모들 태도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옳고 그름을 알고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두 딸을 보면 신앙의 힘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 간 대화도 중요하다. “가족 간 소통과 대화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한 이씨는 “대화가 많아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씨 가족은 봉사하는 가족이기도 하다. 이씨는 초중등부 복사단 담당을 맡고 있고, 김씨는 전례단과 복사단, 주일학교 자모회에 참여한다. 지윤·한나양은 모두 복사를 서고, 한나양은 전례단 활동도 한다. 그래서 청소년 주일 미사가 봉헌되는 토요일은 거의 온 가족이 성당에서 지내는 날이다.
부부는 자신들처럼 자녀가 어린 가정의 부모들에게 ‘성지순례를 통한 신앙 대화’ 방법을 추천했다. “성지순례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주말여행을 갔다가 그 지역에서 미사 참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여행지에서도 주일은 반드시 지킨다는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가족기도’에 대해서는 “일단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경험상, 알람을 맞춰놓고 모이는 버릇을 들이니 기도 시간이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는 부부는 “먼저 일상 기도문으로 시작해보면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성가정 축복장을 받아서 놀랍고도 고맙습니다. 우리 가족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무슨 일에서든 ‘감사’를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상훈씨 가족이 밤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이상훈씨 가족 제공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2-06-12 [제3298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