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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문화가 있는 여름’ 우리 교구 건축문화 답사_구산성당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28 조회수 : 2825

신자들 스스로 쌓아올린 아름다운 벽돌 구조
6·25전쟁 직후 건축 양식 지녀
택지 개발로 철거 위기 놓이자 건물 해체 없이 그대로 옮겨 와



구산성당 전경. 2017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첨탑 등을 분리한 뒤 본래 벽돌 건축물 자체를 해체하지 않고 기존 위치에서 옮기는 방법으로 현재 자리에 복원했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구산성당은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이 형성한 교우촌에서 시작한 구산공소로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구산(龜山)은 지역에 있는 동산이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구산 지역에 공소가 형성된 것은 1830년대 이전으로 추정되나 공식적인 시작은 1836년 모방 신부가 조선에 입국했을 때 김성우 성인을 회장으로 임명하면서부터였다. 구산공소는 기존 박해시기 신자들이 피신해 형성된 교우촌과 달리, 김성우 성인이 전교로써 신자들과 함께 형성한 공소이자 교우촌이라는 특징도 가진다.

김성우 성인의 생가터에 건립된 성당은 성인의 순교정신을 이어받듯 1956년 5월부터 2년간 신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워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당시 구산공소였던 이곳에 신자들은 경당을 건립하고자 논을 빌려 공동경작해 수확한 쌀 100가마를 팔아 자금을 모으고, 한강변에서 자갈을 채취하는 등 온갖 일을 도맡아했다. 마침내 완성한 경당은 이후 1979년 6월 30일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된 뒤, 성당으로 지역 신앙 중심지 역할을 해나갔다. 성당은 아름답기로 유명해 여러 차례 영화·드라마 단골 촬영지로 등장해 대중들에게도 익숙하다.

성당 건물은 6·25전쟁 직후 세워진 성당 건축 양식인 벽돌 구조로 세워졌다. 내부 공간 또한 분절이 전혀 없는 강당형 구조라는 특징을 지녔다. 특히 주변 미사강변도시 대규모 개발로 인한 주택단지 조성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당시 건축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성당이 원형 그대로를 보존할 수 있었던 데는 구산본당 공동체와 교구의 성당 보존을 위한 염원이 있었다. 성당은 2017년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교구와 본당은 구산 교우촌의 역사와 신자들의 추억이 담긴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문화재로서 가치를 살리고자 보존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그해 60년 된 첨탑 등을 분리한 뒤, 본래 벽돌 건축물 자체를 해체하지 않고 기존 위치에서 220m 가량 옮기는 방법으로 현재 자리에 그대로 옮긴 뒤 입구 첩탑을 다시 조립해 복원했다. 이는 국내 건축사에서도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성당은 최근 이러한 가치와 노력을 인정받아 올해 2월부터 국가문화재등록이 추진됐다. 하남시는 문화재등록 추진 당시 “구산성당이 초기 한국 천주교 발전과 재건에 있어 절두산순교성지와 더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다”고 지정 가치 및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올해 6월 국가문화재등록 사전심사를 통과한 성당은 앞으로 6개월 간 경기도 문화재위원회의 국가등록문화재 신청을 위한 사전심의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국가문화재등록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구산성당은 코로나19 이전만해도 이전이 완료되면 소규모 행사와 혼배·장례미사 때마다 신자들에게 내부를 개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4단계에 따른 방역조치로 임시성당을 포함해 모든 공간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신자들은 성당 옆에 있는 성모상과 임시성당 옆에 있는 십자가의 길에서 기도할 수 있다.

※문의 031-792-4631 구산성당 사무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 가톨릭신문 2021-08-01 [제325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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