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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문화가 있는 여름’ 우리 교구 건축문화 답사_ 안성본당 옛 성당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28 조회수 : 2813

유려한 팔작지붕의 멋 한껏 살린 목조 성당
프와넬 신부가 설계·건축 담당
한옥-바실리카 양식 조화 ‘눈길’
성당 건축의 토착화 과정 반영


옛 안성성당의 측면과 후면. 1922년 건립 당시 한국식 형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붕에 모두 기와를 깔고, 용마루 끝과 처마 끝을 들어 올려 한옥 지붕의 멋을 살렸다.


1900년 1월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안성 지역을 방문한 후 지역 신자들은 본당 설립 운동을 벌인다. 신자들은 안성지역 공소를 순방하던 공세리본당 주임 드비즈(Devise) 신부와 협의해 구포리에 현재 성당 터를 매입하고 그 자리의 기와집 21칸을 성당으로 개조했다. 기본 여건을 갖춘 후 드비즈 신부는 1900년 9월 10일 뮈텔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본당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서 깊은 교우촌을 기반으로 설립된 다른 본당과 달리, 당시 신자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본당 설립이 추진된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지리적으로 교통과 물류 중심이었고, 상업 도시를 기반으로 한 장래성이 기대됐던 지역적 특성과 더불어 개신교 유입에 대응하기 위한 심정이 녹아있었다. 이런 신자들의 간곡한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1900년 10월 19일 안성본당이 설립되는 결실을 본다.

초대 주임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신부는 여러 해 동안 성당 신축 기금을 모았다. 신자들은 ‘땅을 팔자, 소를 팔자, 우리 손으로 성당을 짓자’며 건립 운동을 전개했다. 공 신부는 1922년 어느 정도 금액이 쌓이자 신자들 협조로 3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그해 10월 4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파리 외방 전교회 프와넬(Poisnel) 신부가 설계와 건축을 담당한 성당은 264㎡ 규모의 한식 중층구조로 한식과 바실리카 양식을 절충한 형태다. 서울 명동대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성당들이 대개 벽돌조 로마네스크 양식 혹은 고딕양식 건물이었던 것을 고려할 때 초기 바실리카식 공간 구성의 한옥 성당이라는 점은 특별하다.

지붕에 모두 기와를 깔고, 용마루 끝과 처마 끝을 들어 올려 한옥 지붕의 멋을 살린 것은 한국적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내부 공간은 서양식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 예배당 모습인데, 구조에서는 전형적인 삼랑식 바실리카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1955년 성당 건물 정문 쪽에 추가로 고딕식 종탑을 증축해 현재 처음의 성당 전면은 볼 수 없으나 후면에서는 한국식으로 합각을 형성한 팔작지붕 형태를 완벽하게 볼 수 있다.

성당 건축의 토착화 과정을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는 성당은 현재까지 한식 목구조로 지은 대표적인 한옥 성당에 꼽히며 한국 천주교 성당 건축사의 귀중한 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건축 과정도 흥미롭다. 공베르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 힘을 빌려 성당을 지었다. 기와와 돌 등은 안성군 보개면 동안리에 있던 1786년의 누각식 유교 강당을 구입해 헐어 사용했다. 주요한 목재들은 압록강과 충남 서산 지방에서 운반했다.

당시 안성성당의 건축은 천주교회가 지역 사회에 완전히 정착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본당 측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박해를 피해 다니던 가톨릭 신자들이 지역의 관심이 쏠린 건축물을 짓는 것 자체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의 031-672-0701 안성성당 사무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1-08-01 [제325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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