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석조에 전통기와 올려 한불(韓佛) 양식 절충
동서양 기법 혼용된 드문 사례
원형 그대로 유지돼 가치 높아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
경기도 의왕시 원터면에 자리한 하우현본당은 현재 의왕시뿐 아니라 안양·성남·과천 등지에서 차량으로 15분여 정도면 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박해시대에 이곳은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청계산과 광교산자락에 둘러쌓인 지리적 이점으로 교우촌이 형성됐던 장소다.
하우현은 1802년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한덕운(토마스) 복자, 1845년 이 지역에 살다 순교한 김준원(아니체토), 1866년 병인박해 때 목숨을 바친 본당 주보성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를 비롯해 많은 신자들이 거주하며 공소가 형성됐다. 교우들이 때로는 박해를 피하고자 땅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던 곳이었다 하여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특히 하우현은 본당 설립 이전부터 서울 인근 지역의 대표적인 공소로서 안양, 안산, 의왕, 군포, 시흥 지역에 신앙을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1884년 고(故) 김기호(요한 세례자) 초대 총회장의 주선과 왕림본당의 도움으로 성당을 건립한 하우현공소는 1900년 교구 내 세 번째 본당으로 승격됐다.
본당에 들어서면 성당 옆 한옥 건물이 신자들을 반긴다. 바로 초대 주임이었던 샤플랭 신부가 1904년에 신축해 2년 뒤 완공한 사제관이다. 사제관은 서양식 석조에 한국 전통기와가 올라간 한불 절충식 건축양식으로 건립됐다. 20세기 초반 사제관을 건축하면서 동서양 건축 기법이 혼용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 이는 샤플랭 신부가 이 땅의 전통을 배려하려는 생각이 묻어난 건축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평면 및 구조·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인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2001년에는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등록됐다. 사제관이 완공됐을 때,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 초대 주한프랑스 공사가 종을 기증해 헌납식 및 축성식을 거행했을 정도로 양 국가 모두에 의미있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사제관은 특히 본당이 최초로 건립된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가치를 빛낸다. 사제관은 1979년과 2004년에 보수작업을 거쳐 단청을 했을 뿐,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본당 제2주보성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의 이름을 딴 ‘볼리외 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본당은 “사제관은 성당 초기 시절부터 내려온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로 그 가치를 지닌다”고 밝히고 있다.
사제관 앞마당에는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의 기념비와 성상이 자리해 있다. 프랑스 출신으로 조선에서 사목한 볼리외 신부는 1982년 9월 5일 본당의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됐다. 그는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인근 청계산의 둔토리 동굴에 몸을 숨기고 하우현을 오가며 우리말을 배우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보살폈다.
이 땅의 신자들을 위해 사목한 두 이방인 신부의 흔적이 있는 본당은 지난해 교구 순례사적지 제2호로 지정됐다. 설립 120주년을 맞은 올해 5월 1일에는 윤영민 주임 신부 주례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유해 안치 봉헌 미사를 봉헌했다. 같은 달 27일에는 본당 성모동산에서 고(故) 김기호 총회장 유해 안치 예식을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봉헌했다.
현재는 코로나19 4단계에 따른 교구 방침으로 모든 대면 활동과 성전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대신 성당 성모동산에 있는 십자가의 길과 사제관 앞마당 성모상에서 기도 봉헌을 할 수 있다. 성당 앞에 마련된 카페에서 쉬어갈 수도 있다.
※문의 031-426-8921 하우현성당 사무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 가톨릭신문 2021-08-01 [제325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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