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버리고 인간애 회복할 때 상생할 수 있어”
교회의 민낯 들춰낸 코로나19
본질적 사명과 역할에 대한 성찰로 성숙한 신앙공동체로 새로워져야
대면 전례와 성사는 신앙생활 근간
비대면 방식 활용할 수는 있지만 신자들 찾아가는 사목적 노력 필요
힘들수록 더 심해지는 양극화
교회, 가난한 이들의 옹호자 돼야
사제 대상 생명교육 도입 시급
교회 생명 수호 운동에 관심 부탁
소비 위주 삶이 만든 생태계 위기
생명 존중하는 삶으로 회귀하며 일상 속 생태적 회심 실천이 필수
함께 걸어가는 공동합의성 회복
구성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 중심으로 함께 노력해야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시기이지만 아직 우리의 현실은 어둡다. 백신이 개발됐다고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여전히 우리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미사 등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엄중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올 한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극복하고 교회의 사명인 선교를 위해 어떻게 나서야 할까? 본지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로부터 올해 한국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사목 과제와 실천 방향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용훈 주교와 본지 장병일(바오로) 편집국장의 대담은 지난해 12월 18일 수원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 장 국장 :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신자들을 위해 소규모 전례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일선 사목자들이 명심해야 할 조언 같습니다.
▲ 이 주교 : 본당 사목자들이 미사를 좀 더 늘린다거나 온라인 강론, 그리고 초등부와 중고등부 청소년들을 위한 온라인 주일학교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자들의 영적 갈증과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구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특성을 감안하여 가정교회의 기도생활을 위한 자료를 배부하고. 사순시기에 어르신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 컬러링 북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구차원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이렇게 하라’하고 요청할 수는 없겠지만, 공동체 조직이 살아있는 한 신자들은 다시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장 국장 : 이번에는 생명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겸허한 성찰을 해봐야 할 듯합니다. 낙태가 합법화됐습니다. 교회의 입장은 물러설 수 없이, 명백하고 단호하지만 낙태 문제에 대한 접근은 좀 더 다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낙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얼마나 수용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 태아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실제적으로 가톨릭 신자 사이에서도 만연하고 있는 낙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요?
▲ 이 주교 :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을 놓고 절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최근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에서 교회 내 생명교육 실태를 조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사제들에 대한 생명교육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제 대상의 교육 부재 혹은 부족, 사목자의 관심 결여는 자연히 부모, 청소년으로 연결됐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서, 사제를 대상으로 한 생명교육이 시급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생명은 없습니다. 사랑의 결실인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단지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낙태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월권행위입니다. 한 여성이 혹은 한 가정이 출산의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낙태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책임을 방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이나 가정에게만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포하는 ‘생명의 복음’은 단지 낙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과 이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출산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여성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출산의 문제와 책임은 한 여성이나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반생명적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해 기도하고, 생명을 살리고 수호하는 교회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립니다.
- 장 국장 : 코로나19의 주요 원인으로 환경파괴가 제기되는 등 생태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주교회의는 지난 추계 정기총회를 마치고 특별 사목교서까지 발표했는데요. 가톨릭 신자와 교회 공동체가 ‘생태적 회심’과 이에 대한 실천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 이 주교 : 코로나19 이후로 온 인류의 관심이 환경과 생태위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우리의 삶은 편리함이라는 잘못된 습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고 생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편리함을 포기해야 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생태적 회심이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선 진정한 회심과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고, 이는 어느 한 집단이나 계층이 아닌 모두가 해야 할 필수사항이라고 봅니다.
교황님께서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 시기는 징벌의 시기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별해야 하는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행복의 척도로 착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삶은 결국 생태계와 인류의 위기로 돌아왔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물질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삶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라도 먼저 소비 중심의 삶에서 벗어난다면 환경과 생태계를 살리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장 국장 : 한국교회는 지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살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선포의 의미와 이를 살아가는 신자에게 하고 싶으신 당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올해는 김대건 성인뿐만 아니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합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조속한 시복을 위해 교회와 신자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 이 주교 : 이번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은 한국교회의 귀중한 유산인 순교영성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고, 신앙이 주는 참 기쁨을 나누는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희년을 통해서 성 김대건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순교영성을 본받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의 가치가 더욱 깊어지길 바랍니다.
희년 주제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는 이 시대가 우리 신앙인 각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시며 하느님에 대한 놀라운 신앙을 고백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선교와 봉사의 삶을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고, 지구 환경을 살리는 생명 문화 건설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 올해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합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당시 137개 교우촌 신자 1만8000여 명을 12년 2개월 동안 보살피시다가 탈진해 병사하신 ‘땀의 증거자’이십니다. 특히 한국교회의 사제들이 본받아야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을 위해서도 열성을 다해 기도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장 국장 : 교회 곳곳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걸어가는’ 공동합의성을 실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공동합의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다수인 평신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백성들과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사목자들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교회를 위해 한국교회는 올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 이 주교 : 공동합의성 실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동합의성은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존중과 섬김, 배려의 정신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한국교회가 성직자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면, 이제는 어느 한 구성원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야합니다. 이제 교회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공동합의성을 회복해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성직자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주교단 역시 공동합의성을 지지하고 있고, 공동합의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합의’라는 표현 때문에 ‘민주주의 다수결원칙’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동합의성은 교회의 생활과 활동방식에 부합하는 결정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다수결로 결정했다하더라도 하느님 말씀과 전통에 부합하지 않으면 공동합의성이 실현됐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구가 운영하는 평의회나 위원회에서, 먼저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 작은 시노드를 일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공동합의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내 여러 기구와 제도를 잘 운영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경청하여 공동합의성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장 국장 : 올 한해를 시작하는 한국교회가 염두에 두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이 주교 : 올해는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이기도 하지만 ‘성 요셉의 해’이기도 합니다. 요셉 성인은 자신을 버리고 드러나지 않게 성가정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요셉 성인처럼 살아가고자하는 염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배필이신 요셉 성인을 한국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모시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요셉 성인을 본받아, 신앙을 삶에서 드러내지 않으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천주교 회원일 뿐입니다. 진정한 천주교인으로 본연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장 국장 :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모든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이 주교 : 한국사회에서 부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애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우리가 이기심을 버려야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소유와 명예, 욕심, 이기심을 위해 울타리를 치고 살면, 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사는 이웃의 어려움과 아픔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한국사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울타리를 치우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유대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대담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진행했으며, 사진 촬영 시에만 마스크를 벗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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