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릉본당 주임 이철학 신부가 자동차 안에 있는 임신부에게 성체를 영해주고 있다.
교중 미사 직전인 오전 10시 30분, 서울대교구 태릉성당 주차장에 제의를 입은 주임 이철학 신부가 서 있다. 성체를 모신 성합을 든 채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를 살피는 모습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마침내 그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조수석 창문을 내린다. 얼굴을 확인한 이 신부가 차창 너머로 성체를 건네고 강복한다. 5월 31일 펼쳐진 첫 ‘드라이브 스루’ 병자 영성체 현장이다. 이 신부는 이날 출산을 앞둔 임신부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신자 2명에게 성체를 영해 줬다.
같은 시각, 태릉본당 부주임 김동호 신부도 성합을 들고 성당 인근 한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암 수술 후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가 병자 영성체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집 안에 들어가는 대신 현관문 앞에 서서 성체를 분배하고 병자에게 강복했다. 사제가 집 안에 들어가 참회 예식과 말씀 전례까지 하는 일반적 병자 영성체 예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성체를 영한 정정림(베르나데트)씨는 “줄곧 가톨릭평화방송 TV 미사를 보며 신령성체만 해 와서 성체가 정말 그리웠다”며 “영성체를 할 수 있어 기쁘고 좋다”고 반색했다.
이같이 새로운 방식의 병자 영성체는 이철학 신부가 추구하는 ‘감동 사목’의 일환이다. 이 신부는 아픈 신자들이 좀 더 편하게 영성체를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신부가 집에 온다면 신자들이 아픈 몸으로 집 청소하랴, 옷 차려입으랴 고생이 많아요. 겉치레는 생략하고 성체를 영하는 데 집중했죠.”
올 2월 주임으로 부임한 이 신부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본당 사목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첫 행보는 소통이었다. 본당 신자 1200가정에 전화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한식 미사 때 사별한 가족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때 이 신부는 얼마 전 받은 붓글씨 선물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 신자가 부임 편지를 붓글씨로 필사해 보낸 것이었다. 곧장 그 교우에게 연락해 사별가족 600명 이름을 모두 한지에 써달라고 부탁했다. 가족들 이름이 적힌 한지를 본 신자들은 기뻐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빵을 사 1200가정에 선물했다. “성체를 못 모시는 대신 빵이라도 먹으라고, 기도를 많이 담아 보냈죠.”
신자들 반응은 엄청났다. 냉담 교우들이 감동 받아 다시 성당을 찾기도 했다. 요즘은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거동이 불편한 신자를 위해 주일 미사 강론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 신부는 “신학생이 되기 전 포스코에서 일하던 6년 동안 청년 레지오단장과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했다”면서 “그래서 신자들 마음을 헤아리는 데 관심도 많고, 요령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웃음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이 신부는 “기쁨과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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