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포니합창단 단원들이 이영심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가요 ‘고향역’을 합창하고 있다. |
“코~스~모~스 피어 있는~”
경기도 성남시에 자리한 안나의집. 무료급식소로 널리 알려진 안나의집 2층에서 40~60대 남성 20여 명이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가요 ‘고향역’을 열창하고 있다.
이영심(도미니카, 60) 지휘자는 “지금은 일반인이 아니라 합창단원이 내는 소리를 내야 한다”며 “내 목소리가 옆 사람 소리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단원들을 독려한다. 다시 지휘자의 손이 움직이자 단원들의 발성도 한층 부드러워지고 화음도 조금씩 조화를 이뤄간다.
연습이 한창인 이들은 노숙생활을 접고 안나의집에 입소한 이들로 폴리포니합창단원들이다. 합창단은 입소인들이 노숙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자 2017년 (재)바보의나눔 지원으로 시작됐다.
안나의집 노숙인자활시설 강병선 팀장은 “합창단원들은 사업 실패와 각종 시련을 겪으며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며 “사기를 당한 분들이 많아 언제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칠 것이라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용접 일을 했던 박OO(60)씨 역시 1년간 월급을 못 받고 술에 빠져 살다 안나의집을 찾았다. 박씨는 “조상님께 하직 인사드리고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안나의집과 김하종 신부님을 봤다”며 “나처럼 좌절하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지난 7월에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김 신부와 사회복지사들의 따뜻한 격려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술도 끊고 망가진 치아도 새로 해 넣으며 육체는 조금씩 치유됐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그런 박씨에게 합창단 활동은 자신감과 웃음을 찾아주는 단초 역할을 했다.
“작년에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섰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지난날 겪은 시련도 이겨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어요.” 박씨는 안나의집 작업장에서 종이봉투를 접으며 매달 100만 원가량의 돈을 모아 새 출발을 기약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자신감이 없어 목소리가 안 나오던 이들이 합창을 통해 치유받고 목소리를 되찾게 된다”며 “상처받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안나의집은 합창단 외에도 입소자와 지역민들을 위한 인문학 교실을 운영하며 노숙인 인식 개선 활동도 펼치고 있다. 폴리포니합창단은 올여름 합창대회 참여를 목표로 연습 중이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