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3) 가르멜 여자 수도원 (상)
교구에 둥지 튼 지 40년된 공동체
발행일2020-01-12 [제3178호, 4면]
천진암 성지 계곡에 자리한 천진암 삼위일체 맨발 가르멜 여자 수도원 전경.
경기도 광주 퇴촌면 천진암로 1203-1번지.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계곡에 자리한 천진암 삼위일체 맨발 가르멜 여자 수도원(원장 김용선 수녀, 이하 수도원). 올해는 수도원이 수원교구에 둥지를 튼 지 40년이 되는 해다. 현재 교구에서 아빌라의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을 따라 사는 유일한 가르멜 수도 공동체다.
‘가르멜’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카르멜 산을 말한다. 이스라엘 하이파 동남쪽에 있다. 가르멜 수도회의 뿌리는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Elijah)다. 기원전 950년 경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은수 생활을 했던 것에서 수도회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피아첸자(Piacenza)의 한 순례자 기록에 따르면 카르멜 산에 은수자들이 모여 살며 이미 570년경 수도원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때 은수자들이 영성 모토로 삼았던 것은 ‘엘리야 정신의 계승, 발전’, ‘성모 신심을 자기 영성으로 하기’, ‘거룩한 독서의 전통 뿌리내리기’였다.
이후 예루살렘 총대주교 성 알베르토가 성 브로카르도 수사에게 수도회 첫 규칙서를 제정해 주었다. 규칙서에 따르면 13세기 초, 수도자들이 엘리야의 우물 근처에 살면서 한 수도원장 통솔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는 수도회 설립에 대한 최초의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규칙서에는 또 수도자들이 은수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절제와 단식, 침묵을 지켰다고 명시돼 있다.
13세기 팔레스티나 최북단 항구 아코의 주교였던 드뷔트뤼는 팔레스티나에 라틴 왕국이 설립된 후인 12세기에 순례자들과 수도자들이 카르멜산에 정착한 것을 기록했다.
이처럼 엘리야의 정신을 따르는 후계자들은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은수 생활을 하며 공동체를 이뤘다. 중세 가르멜 수도자들에게도 카르멜 산은 엘리야 예언자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였다. 그들은 엘리야가 우상 숭배를 척결한 일,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쇄신한 일, ‘비’로 상징되는 하느님 자비와 은총이 천상에서 내리도록 줄곧 기도한 일에 주목했다.(열왕기 상권 18장 이하)
알베르토 규칙서는 1226년 호노리오 3세 교황에 의해 회칙으로 인준됐는데, 가르멜 수도자들은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팔레스티나 라틴 왕국이 쇠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게 됐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수도회는 1247년 인노첸시오 4세 교황이 회칙을 완화하고 탁발 수도회로 인준하면서 사도직에 종사하게 됐다. 이로써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유럽 각지에 철학원과 총학원을 설립했다. 스콜라 시대에 들어와서는 독자적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문예 부흥 시기에 중요한 인문주의자들을 배출했던 수도회는 그러나 종교 개혁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한편 수도회 개혁으로도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수도회는 강한 신비적 경향을 띤 수도회로 변모됐으며 본래의 은수자적 모습을 갖췄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세운 수도원들에서는 은둔과 관상 생활이 영위됐고, 십자가의 요한에 의해 탁발승들 사이에서도 개혁이 시작됐다. 이 개혁 그룹들은 본래 가르멜회에서 독립하여 또 하나의 수도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맨발의 가르멜회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출처: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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