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미진 기자 "탈북 신앙인 냉담 안타까워...이웃 사랑과 관심 필요해"
▲ K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강미진(데레사) 데일리NK 기자 <사진=강미진 기자 제공>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최영일 시사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북녘의 고향에도 예수님의 햇살이 밝게 비췄으면
남한에 온 지 10년, 세대 격차 피부로 느껴
2010년 12월 4일 데레사로 세례 받고 가톨릭 신앙 생활
삶이 곧 신앙이라고 느끼며 생활하고 있어
암 진단 후 냉담했으나 주변의 기도로 신앙 되찾아
상처받고 냉담하는 탈북민 안타까워, 지역사회 관심과 사랑 필요해
북한을 색안경끼고 비난만 하는 행동 자제했으면
[인터뷰 전문]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죠.
주님 성탄 대축일의 기쁨이 온 누리에 퍼져서 북녘에도 신앙의 자유가 도래하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북한이탈주민 3만 명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이분들이 남한에서 맞이하는 성탄은 어떤 의미일까요.
언론인 신자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 신자이시죠.
강미진 데일리NK 기자 연결해 성탄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강미진 기자는 민간대북방송인 국민통일방송 북한팀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강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네, 성탄 축하드립니다.
▶네, 성탄 축하드립니다.
▷주님 성탄대축일을 맞아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계십니까?
▶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그전에도 여러 성당에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올해 저의 성탄절 기도는 고향 주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라든가 한국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기도였었고요. 고향 주민들이 새해에는 좀 더 밝은 예수님의 햇살을 다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참빛으로 오신 주님의 햇살이 북녘에 둔 친지 또 친구 분들에게도 퍼졌으면 하는 마음 갖고 계시네요. 혹시 강 기자님, 남한에 정착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저는 꼭 10년차입니다.
▷그러면 2010년에 오신 거네요.
▶네, 10년 말에 제가 왔고요. 어쩌다 보니까 진짜 이렇게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현재 기자로 일하고 계시고 많은 사람들 만나고 정보를 접하시다 보니까 다른 분들보다는 새로운 남쪽 문화를 받아들인 게 더 수월하십니까?
▶저는 일단 아버지로부터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기 때문에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분들보다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길게는 20년 넘게 남한에서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하는 삶이 녹록치 않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시던데요. 기자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이제는 더 익숙하고 편안해진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일단 문화적인 그런 부분들이 초기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회식을 한다거나 아니면 회사 내에 그런 규칙이라든가 이런 게 많이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졌고요.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젊은이 세대하고 저희 세대랑 문화적인 충돌, 그런 게 아직도 어렵기는 합니다.
▷제가 여쭤보지는 않겠습니다만 강 기자님이 5학년이시잖아요. 그런 면에서 세대 격차를 느끼신다는 말씀이시네요. 사람들 누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 기자님, 언제 가장 향수병을 심하게 느끼세요?
▶막 울컥하네요, 진짜. 사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이렇게 살다 보니까 언제 향수병을 느낄 새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때 향수병을 심하게 느끼냐면 1월 1일. 이게 얼마 안 남았어요. 1월 1일하고 추석 날 최근에는 어머니 모셔왔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데 그전에는 차라리 추석날이나 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많았었거든요.
▷북녘 고향이 어디십니까?
▶저는 양강도 혜산시입니다. 백두산 바로 근처죠.
▷그리고 이쪽에 오셔서 신자가 되셨잖아요. 세례는 언제 받으셨어요.
▶제가 2010년 정착을 했다고 했잖아요. 2010년 8월 말에 정착을 했는데 2010년 12월 4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히 세례 받은 날짜까지 기억하고 계십니다.
▶잊을 수가 없죠.
▷그러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교리교육을 거쳐야 하잖아요. 어떻게 교리교육은 어디에서 받으셨어요.
▶제가 사실 정말 운 좋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 하면 저희가 한국에 정착해서 조사기관 거치고 하나원이라는 기관에 들어갔을 때 그때 교리반이 저희 기수부터 처음 생겼었거든요. 제가 교리 1기생이거든요.
▷가톨릭 교리반이 하나원에 처음 생겼군요, 그때.
▶그래서 그때 하나원에서 받아들이는 예식까지 마치고 나왔던 거죠.
▷교리교육을 거기서 받으셨네요. 그러면 세례명은 어떻게 되시고요.
▶세례명은 그때 당시 하나원 봉사를 하시던 두 분 수녀님 계시는데 그 수녀님들이 저한테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제 세례명은 데레사입니다.
▷성녀 데레사를 세례명으로 삼으셨군요. 그러면 현재는 본당은 어디시고요.
▶지금 살고 있는 본당은 세곡동 본당입니다.
▷양재 옆에. 남한에서 생활하는 데 신앙생활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겠죠?
▶저는 도움이라고 하기보다 저는 신앙생활 따로 정착 따로 회사생활 따로가 아니라 신앙생활 속에 모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생활까지도. 그러기 때문에 개인적인 성격으로는 남들한테 비난받을 저이지만 신앙생활 속에서 다듬어지는 거죠, 예쁘게.
▷그게 저한테 가슴에 팍 꽂히네요. 신앙생활 한다면서도 신앙 따로 삶 따로 이렇게 유리돼서 분리돼서 사는 분들도 계시는 걸로 아는데 그 말씀 듣고 나니까 제가 참 부끄러워집니다.
혹시 신앙생활 하시면서 또 삶에서 멘토로 의지하고 마음을 나누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 빼고요(웃음)
▶일단은 처음은 주님이죠. 그리고 인간생활에서 멘토로 의지하는 분들이 세 분 정도 계시는데요. 조사기관에서부터 만났던 수녀님들이 계시거든요. 그 수녀님하고 저의 영적 엄마, 대모님이시죠. 어려울 때마다 세 분한테 전화도 드리고 조언도 받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전화 드리고 위안도 얻죠.
▷그러시군요. 오랜 시간 믿음을 갖더라도 마음이 식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상처 때문에 본의 아니게 냉담을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강미진 데레사 자매님께서는 냉담하시거나 혹시 믿음이 시들해지는 시기가 있으셨어요?
▶어떻게 콕 짚으셨네요. 뜨끔합니다. 저는 2016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었거든요. 그때가 제게 찾아온 아픔에 신앙심이 흔들렸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십자가를 주시는지 막 억울하기도 했고요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이제 신부님, 수녀님들 수십 분이 병문안, 전화로도. 한국에서는 암 완치율이 상당히 높다. 예수님이 데레사에게 쉬라고 주는 사인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치료를 받아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때 결심을 했죠. ‘그래, 예수님 백이 있는 내가 이기냐. 네가 내 살덩어리로 기생하는 암이 이기냐.’ 내기를 걸었죠. 저는 그런 의지로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잘 받았고요. 지금은 정상인의 수치와 비슷하게 건강합니다.
▷역시 두 분 수녀님들과 신부님께서 위로의 기도를 해주시고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주셨네요, 기도로.
알고 지내시는 북한 이탈 주민들 가운데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신지 그것도 좀 궁금하고 혹시 주변에 냉담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건지 대체로 어떤 이유 때문인지 좀 알고 싶네요.
▶탈북민들이 신앙생활을 제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요. 제가 알고 있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사실 인간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냉담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관계로 인한 상처 때문에.
▶그렇죠. 이 사례자의 경우는 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성당을 나가지 않았는데요. 이 친구가 다시 성당을 나오면서 예수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가 처음에는 당고개에서 살았었거든요. 당고개에서 파주까지 거의 1년을 다녔습니다.
▷먼 거리를 그렇게 왜 다니신 겁니까?
▶사실 신앙생활과 인간과 연결시켜서 열심히 하거나 냉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친구가 저희 고향에서 온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가 인간과 하느님이라는 그 끈이 신앙생활을 통한 성당이잖아요. 그걸 끊어버리는 게 마음이 아팠었고요. 사실은 우리는 세례식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자녀로 죄를 끓어버리겠다 또 악의 유혹을 끓어버리겠다.
▷‘끓어버립니다.’ 하고 외치잖아요. 세례 갱신식을 하면서요.
▶그리고 그런 여러 가지 하느님하고 약속을 했는데 그 하느님과의 약속을 왜 인간에다 연결시켜서 그러는지 저는 그게 참 안타까웠고. 그래서 그 친구가 좀 더 저희 부족한 신앙심을 통해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많이 다녔었고요. 아마도 탈북민들 대부분은 이렇게 인간과의 관계라든가 아니면 경제적인 여유가 모자라거나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냉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 이탈주민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떤 교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저는 사실 탈북민들이 한국 내에서 살아가다 보면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잖아요.
▷차별도 느끼실 거고 편견 때문에 어려우신 분들도 계실 거고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지역사회 초기에 정착한 탈북민에 대해서는 취업이라든가 대학진학이라든가 가능하면 장학금 지원 생활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정착을 이미 하고 있는 탈북민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를 잘 알아갈 수 있는 가까운 이웃들의 적극적인 신앙 인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가까운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 갑자기 말씀하시니까 몇 달 전에 탈북민 모자가 굶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떠오르는데 참 말씀 중에 우리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거운 주제 같습니다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참으로 풀리지 않고 있잖아요. 지금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북미 갈등이 여전하고 한중일 주변국이 풀어야 할 해법도 만만치가 않은데요. 북한 이탈 주민으로서 또 언론인 신자로서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습니까?
▶저는 북한이 외부 세계로 대화를 통해서 북미대화든 남북대화든 대화를 통해서 외부 세계로 나온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보거든요. 어떤 일에서나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면 난간이라든가 희망, 성과 이런 걸 거둬가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이전처럼 색안경을 끼고 평가를 하거나 비난하거나 이런 거는 자제를 했으면 좋겠고요. 북한 정부도 다 잘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주변 사회, 국제사회의 응원이라든가 비난은 하지 말고 같이 지지하고 잘못한 거는 따끔하게 얘기도 하면서 이렇게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 색안경을 끼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줄여나가는 그런 노력들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남한에 정착한 강미진 데일리NK 데레사 기자 만나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기쁜 성탄 되시길 바라고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출처: cpbc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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