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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미진 기자 "탈북 신앙인 냉담 안타까워...이웃 사랑과 관심 필요해"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9-12-27 조회수 : 1605

[인터뷰] 강미진 기자 "탈북 신앙인 냉담 안타까워...이웃 사랑과 관심 필요해"

 

     

 





















K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강미진(데레사) 데일리NK 기자 <사진=강미진 기자 제공>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진행 : 윤재선 앵커

출연 : 최영일 시사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북녘의 고향에도 예수님의 햇살이 밝게 비췄으면

 

남한에 온 지 10, 세대 격차 피부로 느껴

 

2010124일 데레사로 세례 받고 가톨릭 신앙 생활

 

삶이 곧 신앙이라고 느끼며 생활하고 있어

 

암 진단 후 냉담했으나 주변의 기도로 신앙 되찾아

 

상처받고 냉담하는 탈북민 안타까워, 지역사회 관심과 사랑 필요해

 

북한을 색안경끼고 비난만 하는 행동 자제했으면

 

 

[인터뷰 전문]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죠.

 

주님 성탄 대축일의 기쁨이 온 누리에 퍼져서 북녘에도 신앙의 자유가 도래하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북한이탈주민 3만 명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이분들이 남한에서 맞이하는 성탄은 어떤 의미일까요.

 

언론인 신자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 신자이시죠.

 

강미진 데일리NK 기자 연결해 성탄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강미진 기자는 민간대북방송인 국민통일방송 북한팀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강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 성탄 축하드립니다.

 

, 성탄 축하드립니다.

 

 

주님 성탄대축일을 맞아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계십니까?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그전에도 여러 성당에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올해 저의 성탄절 기도는 고향 주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라든가 한국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기도였었고요. 고향 주민들이 새해에는 좀 더 밝은 예수님의 햇살을 다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참빛으로 오신 주님의 햇살이 북녘에 둔 친지 또 친구 분들에게도 퍼졌으면 하는 마음 갖고 계시네요. 혹시 강 기자님, 남한에 정착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저는 꼭 10년차입니다.

 

 

그러면 2010년에 오신 거네요.

 

, 10년 말에 제가 왔고요. 어쩌다 보니까 진짜 이렇게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현재 기자로 일하고 계시고 많은 사람들 만나고 정보를 접하시다 보니까 다른 분들보다는 새로운 남쪽 문화를 받아들인 게 더 수월하십니까?

 

저는 일단 아버지로부터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기 때문에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분들보다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길게는 20년 넘게 남한에서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하는 삶이 녹록치 않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시던데요. 기자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이제는 더 익숙하고 편안해진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일단 문화적인 그런 부분들이 초기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회식을 한다거나 아니면 회사 내에 그런 규칙이라든가 이런 게 많이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졌고요.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젊은이 세대하고 저희 세대랑 문화적인 충돌, 그런 게 아직도 어렵기는 합니다.

 

 

제가 여쭤보지는 않겠습니다만 강 기자님이 5학년이시잖아요. 그런 면에서 세대 격차를 느끼신다는 말씀이시네요. 사람들 누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 기자님, 언제 가장 향수병을 심하게 느끼세요?

 

막 울컥하네요, 진짜. 사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이렇게 살다 보니까 언제 향수병을 느낄 새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때 향수병을 심하게 느끼냐면 11. 이게 얼마 안 남았어요. 11일하고 추석 날 최근에는 어머니 모셔왔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데 그전에는 차라리 추석날이나 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많았었거든요.

 

 

북녘 고향이 어디십니까?

 

저는 양강도 혜산시입니다. 백두산 바로 근처죠.

 

 

그리고 이쪽에 오셔서 신자가 되셨잖아요. 세례는 언제 받으셨어요.

 

제가 2010년 정착을 했다고 했잖아요. 20108월 말에 정착을 했는데 2010124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히 세례 받은 날짜까지 기억하고 계십니다.

 

잊을 수가 없죠.

 

 

그러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교리교육을 거쳐야 하잖아요. 어떻게 교리교육은 어디에서 받으셨어요.

 

제가 사실 정말 운 좋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 하면 저희가 한국에 정착해서 조사기관 거치고 하나원이라는 기관에 들어갔을 때 그때 교리반이 저희 기수부터 처음 생겼었거든요. 제가 교리 1기생이거든요.

 

 

가톨릭 교리반이 하나원에 처음 생겼군요, 그때.

 

그래서 그때 하나원에서 받아들이는 예식까지 마치고 나왔던 거죠.

 

 

교리교육을 거기서 받으셨네요. 그러면 세례명은 어떻게 되시고요.

 

세례명은 그때 당시 하나원 봉사를 하시던 두 분 수녀님 계시는데 그 수녀님들이 저한테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제 세례명은 데레사입니다.

 

 

성녀 데레사를 세례명으로 삼으셨군요. 그러면 현재는 본당은 어디시고요.

 

지금 살고 있는 본당은 세곡동 본당입니다.

 

 

양재 옆에. 남한에서 생활하는 데 신앙생활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겠죠?

 

저는 도움이라고 하기보다 저는 신앙생활 따로 정착 따로 회사생활 따로가 아니라 신앙생활 속에 모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생활까지도. 그러기 때문에 개인적인 성격으로는 남들한테 비난받을 저이지만 신앙생활 속에서 다듬어지는 거죠, 예쁘게.

 

 

그게 저한테 가슴에 팍 꽂히네요. 신앙생활 한다면서도 신앙 따로 삶 따로 이렇게 유리돼서 분리돼서 사는 분들도 계시는 걸로 아는데 그 말씀 듣고 나니까 제가 참 부끄러워집니다.

 

혹시 신앙생활 하시면서 또 삶에서 멘토로 의지하고 마음을 나누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 빼고요(웃음)

 

일단은 처음은 주님이죠. 그리고 인간생활에서 멘토로 의지하는 분들이 세 분 정도 계시는데요. 조사기관에서부터 만났던 수녀님들이 계시거든요. 그 수녀님하고 저의 영적 엄마, 대모님이시죠. 어려울 때마다 세 분한테 전화도 드리고 조언도 받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전화 드리고 위안도 얻죠.

 

 

그러시군요. 오랜 시간 믿음을 갖더라도 마음이 식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상처 때문에 본의 아니게 냉담을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강미진 데레사 자매님께서는 냉담하시거나 혹시 믿음이 시들해지는 시기가 있으셨어요?

 

어떻게 콕 짚으셨네요. 뜨끔합니다. 저는 2016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었거든요. 그때가 제게 찾아온 아픔에 신앙심이 흔들렸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십자가를 주시는지 막 억울하기도 했고요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이제 신부님, 수녀님들 수십 분이 병문안, 전화로도. 한국에서는 암 완치율이 상당히 높다. 예수님이 데레사에게 쉬라고 주는 사인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치료를 받아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때 결심을 했죠. ‘그래, 예수님 백이 있는 내가 이기냐. 네가 내 살덩어리로 기생하는 암이 이기냐.’ 내기를 걸었죠. 저는 그런 의지로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잘 받았고요. 지금은 정상인의 수치와 비슷하게 건강합니다.

 

 

역시 두 분 수녀님들과 신부님께서 위로의 기도를 해주시고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주셨네요, 기도로.

 

알고 지내시는 북한 이탈 주민들 가운데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신지 그것도 좀 궁금하고 혹시 주변에 냉담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건지 대체로 어떤 이유 때문인지 좀 알고 싶네요.

 

탈북민들이 신앙생활을 제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요. 제가 알고 있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사실 인간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냉담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관계로 인한 상처 때문에.

 

그렇죠. 이 사례자의 경우는 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성당을 나가지 않았는데요. 이 친구가 다시 성당을 나오면서 예수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가 처음에는 당고개에서 살았었거든요. 당고개에서 파주까지 거의 1년을 다녔습니다.

 

 

먼 거리를 그렇게 왜 다니신 겁니까?

 

사실 신앙생활과 인간과 연결시켜서 열심히 하거나 냉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친구가 저희 고향에서 온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가 인간과 하느님이라는 그 끈이 신앙생활을 통한 성당이잖아요. 그걸 끊어버리는 게 마음이 아팠었고요. 사실은 우리는 세례식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자녀로 죄를 끓어버리겠다 또 악의 유혹을 끓어버리겠다.

 

 

끓어버립니다.’ 하고 외치잖아요. 세례 갱신식을 하면서요.

 

그리고 그런 여러 가지 하느님하고 약속을 했는데 그 하느님과의 약속을 왜 인간에다 연결시켜서 그러는지 저는 그게 참 안타까웠고. 그래서 그 친구가 좀 더 저희 부족한 신앙심을 통해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많이 다녔었고요. 아마도 탈북민들 대부분은 이렇게 인간과의 관계라든가 아니면 경제적인 여유가 모자라거나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냉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 이탈주민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떤 교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저는 사실 탈북민들이 한국 내에서 살아가다 보면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잖아요.

 

 

차별도 느끼실 거고 편견 때문에 어려우신 분들도 계실 거고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지역사회 초기에 정착한 탈북민에 대해서는 취업이라든가 대학진학이라든가 가능하면 장학금 지원 생활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정착을 이미 하고 있는 탈북민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를 잘 알아갈 수 있는 가까운 이웃들의 적극적인 신앙 인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가까운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 갑자기 말씀하시니까 몇 달 전에 탈북민 모자가 굶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떠오르는데 참 말씀 중에 우리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거운 주제 같습니다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참으로 풀리지 않고 있잖아요. 지금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북미 갈등이 여전하고 한중일 주변국이 풀어야 할 해법도 만만치가 않은데요. 북한 이탈 주민으로서 또 언론인 신자로서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습니까?

 

저는 북한이 외부 세계로 대화를 통해서 북미대화든 남북대화든 대화를 통해서 외부 세계로 나온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보거든요. 어떤 일에서나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면 난간이라든가 희망, 성과 이런 걸 거둬가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이전처럼 색안경을 끼고 평가를 하거나 비난하거나 이런 거는 자제를 했으면 좋겠고요. 북한 정부도 다 잘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주변 사회, 국제사회의 응원이라든가 비난은 하지 말고 같이 지지하고 잘못한 거는 따끔하게 얘기도 하면서 이렇게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 색안경을 끼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줄여나가는 그런 노력들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남한에 정착한 강미진 데일리NK 데레사 기자 만나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기쁜 성탄 되시길 바라고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출처: cpbc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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