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치있는 열차 성지순례“ 가족 사랑도 깊어져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벗삼아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난히 날이 맑았던 지난 9일 주일, 서울 반포4동본당과 수원교구 인덕원본당 신자들은 특히 더 이색적이고 뜻깊은 순례길을 떠났다.
열차 성지순례.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과 마음을 싣고 떠난 순례길은 신앙 선조들을 뵈러가는 기쁨에 열차 여행의 정취가 더해져서 신앙의 의미와 생활의 즐거움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행선지는 배론성지. 역과 가까워 따로 이동 차량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성지이고, 개발이 잘 돼 있고 인근 경관도 좋아서 볼거리도 많다.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고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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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오오 가족끼리, 그리고 따뜻한 이웃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두어시간 덜컹거리다보면 간이역인 중앙선 구학역(九鶴驛)에 닿는다. 아홉 마리 학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표 앞에 선 열차에서는 반포4동본당에서 1천여명, 인덕원본당에서 1천여명씩 약간의 시차를 두고 2천여명이 넘는 교우들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들은 깃발을 앞세워 줄을 맞추고, 바람에 흔들리는 길가의 야생화를 따라 배론성지까지 약 3.6㎞의 길을 걸어 이동했다.
두 아이와 함께 동행한 한 신자는 “배론이야 유명해서 여러 번 와봤지만 열차로 온 적은 처음”이라며 “밋밋한 전세버스보다 훨씬 더 정감 있고 따뜻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반포4동본당 주임 강귀석 신부는 “버스로 순례를 하게 되면 옆 사람하고만 얼굴을 마주하지만 기차를 타게 되니까 오며 가며 본당 교우들 서로 친교를 더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신부는 다섯 시간 남짓 걸리는 기차 여행 내내 차량을 오가며 인사도 하고, 음료도 나눠주고, 아이들 등을 다독거리느라 분주했다.
인덕원본당은 아예 식사도 기차 안에서 하고, 미사도 기차 안에서 봉헌했다. 9량, 11량 두 대의 기차에 나눠 탄 교우들은 색다르다 못해 흥미진진한 열차 여행 겸 성지순례의 기쁨을 만끽했다.
주임 송영오 신부는 미리 성지에 도착, 역에서 배론성지까지 걸어서 도착하는 교우들을 소탈한 웃음으로 맞았다. 인덕원본당은 특히 ‘우리가족 사랑의 기차여행’을 기치로 전 신자가, 특히 가족들이 열차를 이용한 특별한 성지순례를 통해 가족간의 사랑을 더해가도록 했다.
반포4동본당은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중앙선을 따라 구학역에 도착해 일정을 마치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 귀가했다. 인덕원본당은 순례 후 길을 바꿔 제천, 청주공항, 조치원, 천안과 수원을 거쳐 안양역으로 귀환하는 코스를 따라가느라 여행 시간이 꽤 많아졌다.
지난해 11월 ME를 대상으로 ‘부부사랑 가족열차’라는 성지순례를 처음 선보였던 이광식(프란치스코, 철도관광개발연구원장)씨는 “철도역에서 가까운 성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열차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더 많이 계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제2470호 10월 16일자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