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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29 조회수 : 196

고등학교 때의 친구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의 통화라 정말 반가웠고,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목소리가 차분해지면서 “암에 걸렸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나 봐. 그래서 네게 전화했어.”라고 합니다.


사실 큰 병에 걸리면 자기 잘못을 이야기하며 자책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병에 걸려 고통받는 환자가 죄책감까지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나아갑니다. 어느 철학자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병에 걸렸을 때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뿐입니다.”


병에 걸린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운동하지 않아서, 식습관이 잘못되어서, 성당에 안 나가서 등의 이유를 말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것보다 이 역시 자기 삶을 받아들일 때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벌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 곧바로 책임을 지우는 속 좁은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해 주시는 분이며, 더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잘못되었다고 단죄하는 우리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요한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했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 쫓아낸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판단이 옳지 않음을 “막지 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1독서에서도 진영에서 예언하는 사람을 말려야 한다는 여호수아의 말에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라면서 말리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같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 인간의 뜻과 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몫은 철저하게 악을 멀리하고 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손이나 발이 죄짓게 하면 잘라 버릴 정도로, 또 눈이 죄짓게 하면 빼 던져 버릴 정도로 철저히 악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모든 판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께 더 철저히 다가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 뜻대로 모두가 함께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절대로 돼지랑 씨름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둘 다 진흙탕에서 뒹굴게 되더라도 돼지는 그렇게 되는 걸 아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찰리 멍거).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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