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두 아빠 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아빠 곰에게는 각기 아들 곰이 있었습니다.
한 아빠 곰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물고기를 잡아다 먹였습니다. 다른 아빠 곰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매일 잡아다 주는 물고기를 먹었던 아들 곰은 자기 아빠 곰이 최고라고 늘 외쳤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아빠를 둔 아들 곰은 힘든 사냥에 투덜거리면서 불평을 이야기했습니다. 왜 다른 아빠 곰과 달리 직접 사냥하는 방법만 가르쳐주냐고 했지요. 그래도 아빠 곰은 그때마다 인내를 가지고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두 아빠 곰은 늙었고 자기 힘으로 더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물고기를 받아만 먹던 아들 곰은 투덜거렸습니다. 이 아들 곰은 물고기를 잡을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냥을 배운 아들 곰은 아빠를 위해, 자기를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새끼를 위해 사냥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훈육법은 넘어져도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과 함께했던 사람은 일어나는 법을 압니다. 계속해서 우리 삶 안에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은 불평불만만을 이야기할 뿐,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마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뿌듯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군중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영광만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말을 들으신 뒤에,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즉,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꽃길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가시밭길을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곧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먼저 수난과 죽음으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금 삶을 잘 살 수 있는지를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조건 영광의 길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상징되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부활이라는 참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가장 나이 들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잘 느끼다 죽은 사람이다(장 자크루소).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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